완연한 봄입니다. 기차를 타고 여수에 다녀왔습니다. 무궁화호 열차는 옛날에 꽤 빠른 급행이었는데, 지금은 완행열차처럼 되었습니다. 담배처럼, 요금을 올리기 위하여 계속해서 이름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무궁화호는 경로 할인이 주말에도 되었습니다. 승용차의 승차감은 가격에 따라 다릅니다. 열차도 물론 요금의 등급에 따라 열차의 승차감이 다를 것입니다. 각 열차의 등급에 따른 실내장식은 그렇더라도, 차량의 현가장치가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열차가 전기로 구동하므로 옛날 디젤기관차보다 몰라보게 승차감이 좋아졌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는 새로운 역이 많다는데, 우리 전라선에는 오히려 폐역이 많아졌습니다. 전주에서 여수까지 무궁화호가 경로 할인으로 칠천 원, 소요 시간은 한 시간 40분쯤입니다. 곧 동백이 제철이랍니다. 이 봄날, 기차 타고 구례나 순천, 여수쯤 다녀오시면 어떻겠습니까?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화제입니다. 제 주위 계신 분은 거의 봤거나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화는 줄거리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역할에 맞는 배우의 배역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듣기에, 영화를 본 사람마다 눈물을 흘렸답니다. 호장 엄흥도로 분한 배우 유해진뿐만 아니라, 단종인 노산군(魯山君)으로 나온 박지훈의 표정도 눈물샘을 자극하더랍니다. 제가 춘포초등학교 다닐 때, 1950년대 말, 대장촌역 근처 미곡창고에서, ‘단종애사’라는 흑백영화를 봤습니다. 창고 벽에 친 광목천이 스크린이고, 화면은 빗물이 줄줄 새는 듯 세로줄이 비춰 내렸습니다. 전국을 떠돌아다닌 낡은 필름이어서 영화를 상영 도중에 몇 번이나 필름이 끊어졌었습니다. 단종에 대하여 검색해보니, 세간에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았었답니다. 1984년에 ‘안학모’라는 영월문화원장이 ‘왕방연’에 대해서 국사편찬위원회에 질의해서 몇 가지 고치기도 했었답니다.
금부도사 왕방연의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로 시작하는 ‘단장가(斷腸歌)’는 널리 알려졌습니다. 안학모 원장은 국사편찬위원회에 “단종 유배 교지에 의하면 호송자는 ‘어득해(魚得海)’인데, 인명사전과 고교 학습 교재 등에 ‘왕방연’이 호송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왕방연’은 유배시의 호송 책임자가 아니라 사약을 집행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어떠한가”라고 질의했었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그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고 회신을 보냈답니다. 왕방연의 시조를 옛말로 써보면,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듸 업셔 냇가에 안쟈시니/뎌 물도 내 안 갓하야 울어 밤길 예놋다”입니다. ‘예다’는 ‘가다’랍니다. 또한, ‘천만리’는 ‘한양과 영월’ 사이가 아니고, ‘이승과 저승’ 사이이며, ‘여의옵고’는 ‘이별’이 아니라 ‘사별’이랍니다. 어찌, 단장(斷腸), ‘애가 끊어지는 듯’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역사는 승자의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후세에 남기는 역사 자체를 승자가 저들의 입맛대로 쓰기 때문이기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어떤 사건보다도 짧고도 인상적인 일화나 에피소드를 더 잘들 기억합니다. 항용 정치가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하면서 쓰는 수법이 그런 것 아닙니까?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생리적인 약점까지 훤히 내다보며 별짓 별말들을 다 합니다. “국민들은 1년만 지나가면 다 잊어버립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던 그 누구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뻔뻔스럽습니까. 우리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곧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부터, 그 사람이, 이 지역 사람도 아니고, 오래 기억할 자신이 없습니다. 곧 있을 선거를 앞두고, 누가 풀 섶을 두드린 듯, 여기저기서, 슬슬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만 제일 잘 난 척하는 사람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기상사(自己相似)’라는 자연 현상이 있습니다. ‘전체가 부분을 닮고, 부분이 전체를 닮는 현상’을 뜻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사리를 보면, 고사리 전체 모양과 일부분인 가지의 모양이 닮았습니다. 비슷한 견해를 한의학에서, 특히 침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침을 놓을 때, 오장육부가 몸의 각 부분과 서로 조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듯했습니다. 손이나, 발, 귀 등에 오장육부가 대응되어 있다는 관점 같았습니다. 자세히는 저도 모르고 있습니다만, 불교에서 ‘인드라망(Indrajala, 因陀羅網)’도 그런 전체와 부분의 조응 관계를 뜻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혼란들이 그런 ‘자기상사현상’처럼 보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 없이 혼란스럽습니다. 전체가 부분을 닮았고, 또 부분은 전체를 닮았습니다. 나라마다 대개들 비슷하고, 지구촌 전체가 혼란스러운 모습이 그렇게 보이시지 않습니까?
엊그제부터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 농축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란을 전면적으로 공략하고 있답니다. 초기 폭격으로,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롯하여 국방부의 수뇌부가 무더기로 사망했고, 이란은 유럽 곳곳에 있는 미군기지를 향해 공격했답니다. 이에 이란의 공격을 받은 유럽 각국은 함대를 이란 해역으로 보냈답니다. 가자지구가 초토화되었듯이 이란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약육강식 세상이 됐습니다. 전체는 부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부분이 나름으로 잘 살아야 전체가 정상을 되찾습니다. 세계 각국 정치체제가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밤새 울면서 흐르는구나!’ 하며, 옛날 ‘왕방연’처럼, 창자가 끊어지는 듯 슬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가족신문.kr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