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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歲月閑談>계엄, 대통령 권한은 안 되고 內亂이 되는 이유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6.03.07 11:01 수정 2026.03.07 11:01

▮필자: 조남수 작가․칼럼니스트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인 비상계엄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효력을 상실하자,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결국 탄핵안은 가결되어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어진 공수처의 수사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지난 2월 19일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판사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특검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계엄선포가 대통령이 권한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에 기능을 정지시킬 목적으로 군을 보낸 것은 내란이며,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계엄을 달성하려 하였기에 폭동에 해당하고, 따라서 내란 우두머리 죄가 성립된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아무리 거대 야당의 횡포가 있었다 하더라도 법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였기에 재판부는 공수처의 내란 수사를 인정하고, 특검의 내란 우두머리 공소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어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명목으로 촛불을 훔치는 행위가 용인될 수가 없다”라고 인용하면서, 윤 전 대통령이 주장해온 계엄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는 그것이 대통령이 주장하는 반 국가세력의 척결과 민주주의 수호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회를 봉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은 비집권 세력의 제도권을 뒤집는 혁명이나 혹은 집권세력이 스스로 장기집권을 위한 친위 쿠데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제도권에서 12.3 계엄은 헌정질서를 침해한 내란으로 본 것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은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계엄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계엄이 성공했을 때만 해당한다. 계엄이 성공하면 계엄을 위해 저지른 불법과 폭력은 사라지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는 영웅이 되는 것이고, 실패하면 역적으로 처형당하는 것은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역사적 교훈이며 진실이 된다.
 
대통령의 통치권한에 계엄행위가 있다고 해도 실패하면 사법심사가 아니라 정치적 범죄행위로 처벌받게 되는 것이다. 법 논리 위에 정치가 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이 계엄이 실패하고 나서 국민을 각성시키기 위해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항변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대응이라 할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비상계엄 발동이 왜 내란죄에 해당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지에 대한 논리적 다툼은 부질없는 일이다.
 
지귀연 판사의 판결문에서도 “원칙적으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심사의 대상이 보기도 어렵다”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내란죄로 판단하는 모순된 행위는 계엄 실패가 사법적 판단 위에 있는 정치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하는 1995년 문민정부 시절 신군부 세력이 검찰에 고발되었을 때 담당 검사가 한 유명해진 말로, 이들 서로가 기본적인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데타나 계엄행위는 국가 통치의 기본에 관한 고도의 정치성을 가진 것으로 사법부에 의한 법률적 판단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사법 심사권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뜻을 판결문에 담았으나 결국 계엄이 실패하였기에 사법적 판단을 피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옛글에 유법지극(有法之極)이면 귀여무법(歸如無法)이라는 말이 있다. 법이라는 규칙. 형식의 끝에는 법이 필요 없는 실체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계엄령이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통치권한이라 하더라도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려고 군을 동원하여 실행하였는데, 계엄이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기에 고도의 통치행위가 아닌 사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계엄이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통치권한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국회에 군대를 보냈기에 내란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물음에는 재판부 역시 판단할 수가 없는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는 끊임없이 집단을 이루어 권력을 가지려고 싸워왔다. 부족끼리 싸웠고 민족끼리 뭉치었고, 나라를 만들어 집단의 리더는 권력자가 되었다. 옛날에는 칼과 창으로 싸우더니 근대사회에는 총과 대포로 싸웠다. 그러다가 피를 흘리는 싸움보다 민중의 지지를 더 받는 쪽이 승자가 되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지배층이 피지배층인 국민에게 권력의 선출권을 준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그의 저서 ‘법의 정신’에서 삼권분리를 주장하면서 지금의 정치의 골격인 삼권분립제도가 정착되고 세계 각국은 이 제도를 수용하였고, 선진국일수록 확실하게 자리 잡고 권력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법치주의를 완성해 나갔다.
 
GDP 4만 달러가 넘어서고 OECD 선진국가가 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에 의한 12.3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어 국회를 장악하려고 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거대 야당이 된 민주당의 행정부에 대한 탄핵소추가 남발되고 예산이 삭감되어 정부가 무력화되자 대통령은 계엄이란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계엄은 허술했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채 맨땅에 해딩 하는 식의 무모함으로 인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적을 죽여야 내가 사는 싸움에서 목숨까지 내걸 수 있는 비장한 각오가 없이, 치밀한 계획과 검증도 없이 단순히 헌법상에 있는 대통령 권한 계엄선포권만 믿고 달려들었다가 사지로 빠져든 것이다. 명령과 복종으로 움직이는 군인들이기에 계엄에 동원된 군 지휘관들은 졸지에 명예를 잃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내용도 잘 모르고 참여한 국무위원들까지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다.

일을 하려거든 최선을 다하라. 그 일이 권력을 다투는 일이라면,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고 실패하면 죽임당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내란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선고에 분해할 일도 아니다.<조남수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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