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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축제

文學斷想> 풀떼기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6.01.15 10:30 수정 2026.01.15 10:30

▮필자: 형경숙 소설가

얼마 전 나는 ‘풀떼기’라는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들었다, 
그 풀떼기라는 말이 어찌나 가슴을 설레게 하던지. 너무나 오랜만에 듣게 된 말이라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 형경숙 소설가.

풀떼기 그 안에서 나고 자란 나였지만, 도시의 중학교로 입학하면서부터 기억 언저리로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말이었다.
 
봄이면 대소쿠리에 나물 캐 담고, 진달래꽃 따 담고, 버섯 따 담고, 추석이면 솔잎 따 담고, 메뚜기도 잡아 꿰는 등의 일상이 풀떼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놀이들이었다. 그런데 까마득히 잊혔던 그 풀떼기가, 사라진 아련한 기억들을 되살려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는 나무나 풀 모두를 일컬어 ‘풀떼기’라고 했다. 또 풀떼기 말고 ‘풀때기’라는 것도 있다. 쌀이나 밀가루 등으로 쑤어 만든 죽은 풀때기라고 한다. 풀떼기와 풀때기는 ㅏ, ㅓ, 로 나뉘어진 문장이지만, 풀떼기 안에서 나고 자란 나는 풀떼기와 풀때기를 자연스레 구분해 들으면서 자랐다.
 
풀떼기는 연하거나, 단단하거나, 키가 작거나 크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식물을 일컫는 애칭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 특히 학생들은 우리 풀떼기가 우리 몸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장의 풀떼기는 증세에 맞게만 먹으면 못 낫는 병이 없다고 했다. 그걸 알아서 고장의 풀떼기를 먹으며 자랐더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이 더없이 좋았을 것 아닌가. 짐승도 제 몸이 아프면 어떤 풀떼기를 먹어야 낫는지를 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걸 도외시한 채 살아왔던 것 같다. 아니, 내팽개쳐버렸던 같다.
 
시인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에서, ‘풀이 눕는다’를 ‘풀떼기가 눕는다’로 하였더라면. 그럼으로 풀떼기에 대한 애정이 깊었더라면 모두가 풀떼기를 이용해서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를 ‘풀떼기’로 인용해 보겠다.

<풀- 김수영> ​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번에는 그럼 ‘풀떼기’로 바꿔보자.

<풀떼기- 형경숙>
풀떼기가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떼기는 눕고 /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풀떼기가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떼기가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떼기가 눕는다.

김수영의 ‘풀이 눕는다’를 ‘풀떼기가 눕는다’로 바꾸고 보니, 문장마다 애정이 뭉클뭉클 묻어나는 느낌이다.
 
풀떼기라는 말이 사라진 것 이상으로 가슴 아픈 일들은 너무나 많다.
도시의 건물이나 공원들을 보면 모두가 외국 풀떼기들로 치장들이 되어 있다. 크고 화려한 외국 풀떼기들을 선호하면서 아담하고 소박한 우리네 풀떼기가 소외되어 버리지는 않았는가.

‘미스 김 라일락’이라는 풀떼기가 있다.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속칭 ‘수수꽃다리’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져다가 미스 김 라일락이라고 등재를 해버리는 바람에 ‘수수꽃다리’인 우리의 애칭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까마득히 잊혀진 ‘수수꽃다리’, 어디 ‘수수꽃다리’ 뿐일까. 외국으로 유출되었다가 다른 명칭으로 역수입해 들어온 우리 풀떼기가 얼마나 될지….

우리가 우리 것에 무관심해 있는 동안, 거꾸로 우리 풀떼기가 좋아 외국인들이 가져다가 자기네 것으로 등재해버린 풀떼기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 것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우리 것이라 내세울 수가 없게 된다.
 
우리 풀떼기임에도 우리의 애칭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뭇사람들로부터 잊혀갔고, 무관심해 있는 동안 우리 풀떼기가 남의 나라 풀떼기로 재수입되는…. 다시는 우리 풀떼기를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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