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新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⓺> 허들링을 합시다
►5월호에 이어서
“황제펭귄님! 준비되셨으면 발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황제펭귄이 몸을 일으켜 얼음 방석이 놓인 의자 위에 올라섰다.
1m가 넘는 키에 얼핏 보아도 30kg은 넘어 보이는 당당한 체구였다.
등 뒤 윤기 자르르한 까만 깃털과 앞쪽의 하얀 털이 어우러져 마치 연말 연기대상에 참석하기 위해 벨벳 연미복을 입은 배우처럼 멋져 보였다.
황제펭귄은 고개를 숙여 부리로 가슴과 배의 하얀 솜털을 고른 다음 마이크를 켰다.
“멀리 남극에서 온 황제펭귄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회의가 1월에 열리지 않았더라면 참석하지 못하였을 겁니다.
저희 황제펭귄은 5월에서 6월 사이에 알을 낳고, 8월경에 새끼가 알에서 깨어납니다.
그 시기가 남극에서는 한겨울이죠.
알을 낳으면 대략 65일 동안 아비 펭귄이 발등에 알을 올려놓고 배 쪽 피부 주머니로 덮어 품어줍니다. 그동안 아비 펭귄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알을 보호하며 지냅니다.
무리 생활을 하는 펭귄들은 수컷이 알을 품을 때 영하 50℃ 이하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군집을 이뤄 서로 몸을 밀착하고, 번갈아 자리를 바꿔가며 체온을 유지하도록 하는 이른바 허들링(Huddling)을 합니다.
그 같은 과정을 거쳐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면 어미 펭귄과 교대로 돌보게 됩니다.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위 속에 저장하여 돌아와서 새끼에게 토해서 먹게 하는데, 어린 새끼가 자라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게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저 역시 두 달 동안 알을 품고 다시 지난 다섯 달 동안 태어난 아이를 돌보다가 자기 스스로 먹이를 사냥할 만큼 자랐기에 어렵게 아내의 허락을 받고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습니다.”
황제펭귄의 마지막 말에 동물들이 미소 짓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펭귄이 다시 발표를 이어갔다.
“펭귄들은 바다에 나갈 때 무리를 지어 나갑니다.
사람들은 종종 ‘퍼스트 펭귄’이라는 말을 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펭귄들이 물고기 사냥을 위해 바다에 뛰어들 때 다들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바다에는 펭귄을 잡아먹는 바다표범이나 범고래 같은 천적이 있어 자칫 그들에 의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머뭇거린다고 말이지요.
그때 용기 있는 한 마리 펭귄이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들도 따라 뛰어든다고 하여 그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르며, 도전자 또는 선구자란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말은 맞을까요?
아닙니다.
펭귄들이 바닷가에 도착하면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 맨 앞에 있는 펭귄들이 파도의 세기, 물결의 방향, 그리고 포식자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때가 되었다 싶을 때 신호를 하며 뛰어듭니다. 그러면 다들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지요.
저희 펭귄들에게 있어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입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동물을 평가하며, 판단하고, 정의까지 내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 황제펭귄들이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크나큰 위험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금세기 안에 황제펭귄이 멸종될지도 모릅니다.
그 원인은 바로 기후변화입니다.
펭귄들에게 두꺼운 빙벽과 얼음 바닥은 남극의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어린 새끼를 보호하고 천적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은신처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그 얼음이 녹으면서 은신처와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엘니뇨 현상으로 갑자기 얼음 바닥이 깨지면서 아직 헤엄을 치지 못하는 어린 새끼 펭귄 만여 마리가 한꺼번에 바다에 빠져 익사한 불행한 사고도 있었습니다.
기후변화는 크릴새우 같은 바다생물들의 먹이생물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문제도 동반하고 있습니다.
먹이사슬 변화에는 미세 플라스틱이나 중금속에 의한 해양오염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요,
기후변화나 해양오염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바다생물들이 고스란히 피해 보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불합리한 일입니다.
여기 오기 전에도 어른 펭귄들이 모여 걱정을 하였습니다. 우리 펭귄들이 과연 언제까지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말이죠.
수천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온 펭귄의 삶이 부디 종말을 맞지 않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 역시 저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 또 그다음 대까지 영원히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후 위기에서 지구를 구하려는 인간들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저 황제펭귄의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펭귄이 마이크를 끄자, 의장인 호랑이가 마이크를 켰다.
“황제펭귄님의 발표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기후변화는 결코 미루거나 좌시할 수 없는 우리에게 당면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후진국을 떠나서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아비 펭귄들이 알을 품는 동안 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밀착시키는 허들링을 하듯 말이지요.
그럼 오늘 발표는 여기까지 하고, 예정대로 내일 하루는 쉬시고 모레 속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원봉사자분들의 안내를 받아 시내 구경을 하셔도 됩니다.
저도 여러 날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무척이나 몸이 고단합니다.
그럼 안전하고 아름다운 도시 이곳 전주에서 마음껏 여유를 즐기시고 모레 다시 뵙겠습니다.” ►7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