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몸이 움추려진다.
하지만 힘든 과거가 있었기에 찬란한 오늘이 있고 밝기만 한 내일이 있는지 모른다.
전주에서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승회 대표(48)은 현재 아픔이 내일이 영광이 있다는 집념으로 성실하게 인생을 개척하면서 한 우물만 판 사나이다.
옛날의 좌절은 지금의 단련된 내가 존재했다고 자부하는 김승회 대표는 “항상 고민하고 도전하는 삶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고 그동안 인생역정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인터뷰를 간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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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회 대표는 매일 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도전정신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
| ⓒ (주)전북언론문화원/시사전북/행복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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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회사 입사 동기는 무엇입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아침에 출근하신 아버님이 뇌출혈로 운명을 달리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동생 3명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장남으로서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공사장에서 벽돌 나르는 일부터 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보았습니다. 육체적으로 고생하는 것에 비해 수입이 많질 않아서 그 당시의 수입으로는 가정을 꾸려나가기엔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화장품 대리점에서 일할기회가 생겼는데, 의외로 그 일에 재미를 느꼈고 적성에 맞는 것도 같아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제가 몸담았던 대리점 사장님께서 태평양화학에 추천을 해주셔서 그 도움으로 화장품 영업사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업 관리라는 업무까지 맡아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리점을 직접 경영하는 CEO가 되었습니다.”
-전국 1등을 하셨는데 무슨 특별한 영업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항상 TOP라는 생각이 나를 TOP으로 만든다.”
“군산에서 영업소장을 할 때이다 나는 남들보다 승진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1990년대초 너무도 열악한 근무조건의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고 한달에 한두번 휴무해 고달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근무를 했겠지만 노사문화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에 노조활동을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실력을 많이 인정받지 못하고는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물질적 여유가 없어 둘째 동생을 29살의 나이에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보내야 했던 부족한 형이고 가장이었습니다.
나는 나와 별 차이 없이 어렵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주부사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가족처럼 생각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솔선수범한 결과 영업이 너무나 잘되었습니다.
항상 머릿속에는 TOP이라는 생각이 나를 TOP으로 만든다. ~ 이처럼 일등이 되니까 더 잘되는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가 시작 했고 영업의 비결은 첫째 자신감이고 , 둘째는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은 동반자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셋째는 리더는 잘할 수 있는 정신을 심어 줘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대표로서 사원들한테 주지하는 것이 있다면.
“화장품 영업을 하는 주부사원들은 외로움의 연속입니다.
첫째: 이 일을 해야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하루의 목표! 한 달의 목표! 일년의 목표! 인생의 목표! 를 설정해야한다. 셋째: 본인과의 자존심 싸움이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넷째: 남편과 자녀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자. 다섯째: 나누기 위해 열심히 수입을 올리자며 매일 아침 아침조회 석상에서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좌우명이 있으시다면.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후퇴하게 되고 안 좋은 생각만 가집니다. 항상 고민하고 도전하는 삶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면 언제이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인생의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버님이 일찍 세상을 떠난 때이고 그 다음으로는 가장이된 나에게 가족들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으로 직업을 택할 때 혼자 고민하고 혼자서 해결해 나갈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돈을 벌어서도 써보지 못하고 택시탈 곳도 버스타고 버스탈 곳은 걸어서 돈을 아꼈습니다. 그럼에도 동생의 치료비가 엄두가 나지 않아 더 큰 병원에 가서 치료도 못해 보고 세상을 떠나 보냈을 때, 나는 세상을 원망하기 보다는 나 자신을 단련하고 더욱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져나갔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심에 의지하고 생활하였던 것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 같습니다.”
-라이온스 등 사회활동을 하셨는데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봉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여러 단체나 여러 곳의 봉사활동을 따라 다니다 느낀 게 있었습니다. 누구를 위해 봉사를 하고 돕는다는 것은 나를 성숙시키고 있다는 것과 나 자신보다는 물질적으로나 외로움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봉사활동을 하시고 계신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봉사를 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기보다는 누구나 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시간을 내고 조금 육체적으로 희생하고 가지고 있는 물질을 조금 나누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봉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봉사를 위해 앞으로도 나보다는 남을 위해 열심히 봉사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편한 생활보다는 바쁜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나의 능력을 더욱 개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적극참여하고 어린아이들과 내가 사는 곳의 주민들과 함께 지역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모레 화장품 회사측에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현재 청년실업자 문제로 온 통 사회가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도 전북인재들을 선발해서 전북에 연고를 둔 청년들이 내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저는 아모레 화장품 회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전북출신 인재들을 과감하게 등용하고 전라북도 출신 학생들에게 아모레 회사 취업을 해 줄 것을 부탁하곤 합니다. 아모레측도 이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앞으로 많은 전북 인재들을 채용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평소 자녀들에게 당부하고 있는 교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말 보다는 실천에 포인트를 두고 있습니다. 먼저 제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백마디 말 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는 등 열심히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줍니다. 착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고마울뿐입니다.”
■학력 및 경력 프로필
- 진북 초등학교 졸업
- 해성중학교 졸업
- 생명과학고등학교 졸업 (구 전주 농업고등학교)
- 우석대학교 졸업
- 우석대학교 경영행정문화 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
- 만수초등학교 운영위원장
- 법무보호복지공단 운영위원
- 아름다운가게 운영위원
- 13기 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
- 참여자치 시민연대 회원
- 전주 조은라이온스클럽 6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