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김씨 선조인 관조김녕군 휘시흥 묘제(貫祖金寧君 諱時興 墓祭)가 지난 4월 17일(음력 3월1일) 김녕김씨중앙종친회 주관으로, 전남 고흥군 과역면 가산마을 뒷산 월악산 기슭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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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녕군시흥 관조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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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김씨관조 김녕군시흥은 신라대보공 김알지 35세손이며, 경순왕 8세손으로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 묘청의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당문학광록대부평장사(政堂文學光祿大夫平章事)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원래 김녕군시흥 묘소는 개성 송악산 기슭 명지에 있었다. 그러나 분단 현실에서 확인할 길이 없고, 후손들이 제대로 모시지 못해 안타까워하다 전국 종친들이 뜻을 모아 영돈령공파 본산인 월악산 기슭에 가묘로 봉안했다.
고흥 가산마을에 김녕군 관조묘가 들어선 것은 조선 세조 때 박팽년 등 사육신과 단종 복위를 위한 비밀결사를 지휘했던 김문기 일족이 죽임을 당하면서, 김문기 선생의 손자 김 준이 벼슬을 버리고 고흥에 은거했다. 김 준은 이곳에서 자제와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에만 전념했다.
사육신 김문기 선생은 김녕김씨 충의공파 파조로서 충절의 표상으로 지금도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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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조묘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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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은 관조의 10대 종손이자 영돈령공파의 파조로서 이곳에 묘가 있어 관조묘(貫祖墓)를 봉안(奉安)하고, 고유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이 시초다.
관조묘 아래에는 이여제(二如齊)가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첫 수군 부임지였던 발포진의 동헌을 조선 고종 때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김녕김씨 영돈령공파 종친회 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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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여재와 봉암사 복원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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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는 종손 김 준을 비롯한 김구룡, 김량, 김언공, 김광협, 김기추 등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대원군 때 서원 철폐로 철거됐던 것을 1997년 다시 건립했다. 건물 앞 신도비는 김 준이 서울 필동에서 이곳에 정착하기까지 과정을 새긴 비석이다. 유허비는 이 마을에 정착한 이후 생활상을 기록한 비석이다.
가산마을은 마을골목마다 단종을 향한 충신의 애환과 은거생활로 가문의 뿌리를 내려야 했던 종손의 안타까운 손길이 스며 있으며, 50만 명이 넘는 김녕김씨 가문의 정신적 지주 본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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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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