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에 개봉했던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 제니가 바흐, 모차르트, 비틀스를 좋아했던 것처럼 나도 그녀만큼 클래식 음악과 팝을 좋아한다. 좀 자세히 나의 음악 취향을 말하면 클래식, 크로스 오브 음악, 팝, 트롯, 등 장르를 가리지 않지만,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하면 클래식 음악을 제일 좋아한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음악에 대한 사랑과 노력이 요구된다. 짧은 소품은 그냥 들어도 즐겁고 행복하지만 일반적으로 4형식을 갖춘 교향곡, 협주곡 같은 연주곡을 감상하려면 귀 훈련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8월 어느 날 마이산 촬영을 마치고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일몰 찍기 위해서 그곳에 갔었다. 오층 석탑으로 들어설 때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숙한 '쇼팽의 녹턴'이었다. 작은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층석탑 앞에서 백발의 노신사가 쇼팽을 연주하고 있었다. 얼마나 멋진 풍경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해 질 무렵 오층석탑을 보면서 쇼팽의 녹턴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카메라는 던져두고 로맨틱한 감상자가 되어 남아 있는 빈 의자에 앉아서 원숙하면서도 열정적인 아름다운 연주를 들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피아니스트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이봉기 피아니스트와 인연이 되었다.
정확하게 7시 30분에 청중들의 힘찬 박수 속에서 은발의 '이봉기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섰다. 그는 곡을 하나하나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형식으로 연주회를 이어갔다. 첫 곡은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8번과 6번이었다. 13살 때부터 평생을 타국에서 보낸 리스트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은 남달랐고, 어린 시절 고향에서 들었던 헝가리 민속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헝가리 음악을 수집하고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 헝가리 광시곡이다. 이봉기 피아니스트의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선율을 쏟아낸 헝가리안 랩소디 8번, 6번 연주가 끝났다. 리스트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시원하고 열정이 넘쳐서 좋다.
다음은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 3개의 가곡이다. 슈베르트 가곡이 연주되기 전 이봉기 피아니스트가 슈베르트 가곡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연주도 힘들 텐데 해설까지 하는 연주자의 성의와 친절함에 감동되었다.
리스트 편곡의 슈베르트 가곡은 ‘물 위에서 노래, 물레 감는 그레첸, 세레나데’였다. 슈베르트는 시와 음악이 결합된 최고의 형태인 예술가곡을 만들었다. 이봉기 피아니스트는 세 곡 중 슈베르트가 17세 때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고 작곡했던 ‘물레 감는 그레첸’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그레첸은 인생의 본질을 알고 싶어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버렸던 파우스트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으로 안식은 사라지고 마음이 무거운 그레첸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물레를 돌린다. 연주자는 물레를 감는 그레첸의 불안한 마음의 변화를 피아노 선율에 담아 화성의 색채로 잘 표현했다. 이번 시즌 연주가 끝나면 <파우스트>를 정독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음 연주곡인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연주했다.
마지막 곡은 리스트 편곡의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다.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을 리스트가 편곡한 곡이다. ‘라 캄파넬라’는 이탈리아어로 종을 뜻하는 말이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리스트의 피아노곡 버전은 종소리 울림을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로 탁월하게 묘사하는 연주곡이다. 이봉기 피아니스트의 ‘라 캄파넬라’는 청중들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주는 연주였다. 시작하자 거부할 수 없는 몰입의 세계로 그는 청중들을 끌고 들어갔다. 멀리서 은은하게 들리는 듯, 때로는 가까이서 속삭이는 듯, 섬세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봉기의 ‘라 캄파넬라’에 빠져서 행복했다.
이봉기 피아니스트의 아름다운 음악에 취한 청중들은 ‘라 캄파넬라’ 연주가 끝나자, 모두 일어나서 앙코르를 외치면서 박수를 쳤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으로 앙코르에 답하면서 연주회가 끝이 났다.
연주회가 진행되는 동안 대강당 뒤에 서서 사진 촬영하면서 한 세기를 건너온 위대한 작곡가 리스트를 벅찬 감동으로 만났다.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찬 흥분된 마음을 안고 연주장을 먼저 나와서 포토 존 앞에서 촬영 준비를 했다. ‘이봉기 피아니스트와 리스트’의 사진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봉기 피아니스트와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이봉기 피아니스트 연주회 덕분에 너무 짙지도 연하지도 않은 평범한 나의 삶이 다양한 색으로 채색되었음에 감사하면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