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동학의 핵심사상을 수용한 이 땅의 농민이 떨쳐 일어선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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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평등사상이 근간이다.
조선왕조의 신분제 사회에 맞서 모든 인간은 하느님과 같은 존재로 모두가 동등하다는 평등사상은 민본과 인권의 민주사회를 지향하였다. 또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탈하는 모든 침략을 반대하는 반외세는 인류와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구국항일의병전쟁으로 표출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좌절되었으나, 이후 이 혁명정신은 구국항일의병전쟁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해방 이후 민족민주통일운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위대한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는 전라북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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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농경 중심지였던 전라북도는 탐관오리의 먹잇감이 되었는데, 그것은 동학이 창도되던 초기부터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고, 마침내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1892년과 1893년 삼례와 금구 원평에서 개최된 집회를 통해 동학농민혁명을 이끌 지도부가 갖추어졌고, 1894년 1월 고부봉기는 혁명의 시작이 되었다. 이후 무장기포와 백산대회, 황토현전승을 이끌어내면서 혁명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전주성을 점령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사에 있어서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관민상화에 입각한 집강소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자치를 실현하였다. 또한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에 맞서 항일의병전쟁을 일으킬 때에는 삼례가 출발지가 되었다. 이처럼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자 중심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전북은 수많은 역사문화자원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질적으로 양적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한 백제의 왕도, 후백제의 중심지, 조선왕조의 풍패지향(豐沛之鄕),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성지 등 전북인의 정신적 지주와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유효하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역사문화자원에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전북의 일부 지역, 즉 익산과 전주 등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전북이라는 울타리와 사람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역사문화자원으로는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다.
123년 전, 전라북도 전역은 동학농민혁명과 함께하였고, 그것은 시작과 끝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그러기에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가 되었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이 추진되면서 혁명의 중심지라는 상징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 같아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양상을 보임으로써 기념일 제정을 지체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혁명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전라복도가 “전북의 몫을 찾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서 몫이란 1차적으로 경제적인 몫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외에 역사는 물론 사회문화적인 몫도 함께 찾았으면 한다. 특히 전북인의 정신과 정체성으로 부족함이 없이 동학농민혁명을 바로 지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 전주 역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바로 동학농민혁명 최대 승전지가 전주이며, 관민상화로 민주자치를 실현한 중심지가 바로 전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전주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역사문화벨트 조성사업’의 성패는 향후 동학농민혁명과 전주라는 연결고리를 보다 더 확고하게 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꼼꼼히 짚어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게 보인다.
▲동학농민혁명 주요 지도자였던 김개남의 순국 터에 관한 검증 ▲완산전투에 관한 의의 및 확장성 검토 ▲전주화약(6월11일)에 관한 역사적 사실 검증 ▲진도 연고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의 합리적 안장 등에 관한 다른 학술적인 의견이나 식견, 역사적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이 더해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다음은 강의에 이어 진행된 자유토론에서 도출된 주요 내용을 간추렸다.
황원호 전북언론문화원 자문위원장은 기념일 제정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지정일이 지체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완주군 기념사업회에서 관련 행사를 성대하게 운영하고 있으나 현재는 삼례기포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재 새한건설 회장은 집강소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박대길 박사는 “전주성을 점령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사에 있어서 최대의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후 관민상화에 입각한 집강소를 설치운영함으로써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자치를 실현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박 박사는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호남지방의 각 군현에 설치하였던 농민 자치기구. 농민군의 집강소는 1894년 1월 고부봉기 이래 점령지 군현에 대한 계속적인 장악과 그곳의 여러 가지 민정(民政)을 처리하려고 접주(接主)나 접사(接司)를 둔 데서 비롯되었다”며 “이러한 집강소 체제는 농민군이 전주성을 물러난 뒤인 7월 6일 전봉준(全琫準)과 전라도관찰사 김학진(金鶴鎭)이 농민군측과 정부측이 협력하여 도내의 안정과 치안질서를 바로잡고 그 구체적인 실행방법으로서 집강소를 두기로 하는 관민상화책(官民相和策)에 합의함으로써 전면화됐다.”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또 “전봉준은 전주성 안에 농민군의 총본부인 전라좌우도 대도소(大都所)를 설치한 뒤 군현단위로 집강을 두도록 하여 집강소 체제를 갖추었다”며 “그 결과 나주·운봉 등 설치되지 못한 곳도 있지만, 호남 대부분의 고을에 집강소가 농민군에 의해 설치됐다”고 설명했다.
김동수 미당문학회장은 “동학 관련 사안이 논산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에 전북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게 하면 안된다”며 “익산 백제문화유산 예산이 공주로 넘어가는 것처럼 하면 안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김 명예교수는 또 “전라북도 도세가 너무 약하다”고 지적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은 춘향전(숙종 1694)이 최초이며, 이는 1794년 프랑스시민혁명보다 100년이 앞선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는 이어 “시민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춘향전”이라며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박물관으로 승격해야하고, 동학은 민주정신이며 전라북도 정신을 ‘동학민주혁명정신’으로 정해 불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3월 6일 ‘전주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대표발의해 통과시킨 박형배 전주시의회 의원은 “이 조례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의 정의와 동학농민혁명 기념 및 계승 발전에 필요한 시책 및 사업 발굴 사항이 명시되어 있다”며 주요사업으로 △전주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발굴 및 보존·정비사업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와 사료의 수립, 조사, 연구사업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와 유족을 위한 명예회복사업 △동학농민혁명 정신계승을 위한 시상 및 문화·예술·교육·학술 사업 △동학농민혁명 정신계승을 위한 기념시설 건립 및 조성사업 등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박대길 박사는 전북대를 졸업하고, 전북대 대학원에서 박사(‘조선후기 적상산사고 연구’) 학위를 마쳤다. 주요 이력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 지역사료조사위원,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팀장을 지냈다. 주요 논문으로는 ‘동학의 반외세운동과 천주교’, ‘동학농민혁명지도자 김개남의 처형 경위와 순국 터’, ‘동학농민혁명과 고부봉기’, ‘조선시대 사고제도 연구’ 등이 있다.
<미니 표조 2개>
◇동학농민혁명 전라북도
• 동학의 교리 정립과 전파- 남원 은적암․익산 사자암
• 동학농민혁명 최고 지도부- 교조신원운동(삼례취회․금구취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등
• 동학농민혁명의 시작- 사발통문거사계획과 고부봉기
• 동학농민혁명군 조직 및 혁명의 본격화– 백산대회(무장기포)
• 동학농민혁명군의 최초 승리와 전국 확산 계기- 황토현전승
• 동학농민군 최대 승리와 민주자치 실현- 전주성 점령, 집강소 설치운영
• 구국항일의병전쟁의 출발지- 삼례기포
-전봉준 최후 전투지 등 유적지 75, 시설물 55
-기념행사(정읍, 고창, 부안, 전주, 김제, 완주, 남원 등)
◇동학농민혁명과 전주
• 동학농민군의 최대 승전지
-조선 왕조의 본향豐 沛之鄕이자 호남의 수부首府 전주성 점령
• 1차 봉기 최대 격전지(완산전투/ 정부군: 동학농민군)
• 청·일군의 조선 상륙과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철수
• 집강소 설치운영: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자치 실현
• 동학농민군 지도자 김개남 순국 장소(西敎場)
※혁명 정신에 합당한 명분과 상징성 확보, 미래지향적인 가치관 정립, 선택과 집중으로 동학농민혁명 중심지 전주 위상 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