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땅 위에 있는 길을 육로(陸路)라고 하고, 바다에 있는 길을 해로(海路)라고 하고, 공중에 있는 길을 항로(航路)라고 합니다. 기차가 다니는 길을 철로,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차도, 물고기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어도, 사람이 다니는 길을 인도(人道)라고 명명하였습니다.
◇ 우리 인생여정에 선택할 다양한 길 있다
길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 역사적 의미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시간과 공간, 과거와 미래를 거치는 과정을 말하는 길로서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규범적 의미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 관습과 전통을 말하는 길로서 ‘부모의 길, 자식의 길, 조상의 길’이라고 합니다.
• 전문적 의미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전문지식이나 기술로서 사회의 공공의 선과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의 길로서 ‘의사의 길, 변호사의 길, 언론인의 길’이라고 합니다.
• 사명적 의미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임무와 책임의 길로서 ‘공직자의 길, 성직자의 길, 특사의 길’이라고 합니다.
• 방법과 수단으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어떤 일은 성공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비결을 말하는 길로서 ‘길이 보입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 원초적인 의미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원초적인 길로서 원시인들이 의식주의 재료와 조수, 과실, 어패류 따위를 주거인 집으로 운반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왕래하면서 생겨난 발자취가 길이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미래적 의미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유익한 역할을 의미하는 길로서 ‘자넨 그 길로 가야 장래에 성공하네, 그 길이 자네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네’라고 쓰이기도 합니다.
• 성서가 말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천국 가는 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길은 요한복음 14장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길이 예수입니다. 이 길이 진리이며, 생명이며,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길은 이렇게 다양하게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 길닦는 사람 흥하고, 성쌓는 사람 망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길이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사람은 길과 함께 생활했고, 길과 함께 문명을 이루고, 번영을 이루고, 길과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길과 함께 살아왔으며, 길이 제공하는 편리함을 누려왔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길의 역사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길에 대해 감사하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길은 인류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길이 있습니다. 중국 남서부 윈난성과 쓰찬성에서 티베트와 인도와 네팔을 연결하는 매우 험준한 산악 길입니다. 차마고도는 이름 그대로 차(茶)와 말(馬)을 교역하던 길입니다. 해발 2000~4000m가 넘는 높고 험준한 산악지형의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마방(馬幫)이라고 불리던 상인들이 차와 말을 운반하며 문물을 교류했던 길이었습니다. 차마고도는 단순한 교역로가 아니라, 여러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와 종교가 교류했던 통로로서 생계를 유지했던 삶의 길,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길을 따라 길과 함께 길 중심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박사가 쓴 <호모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길을 닦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성을 쌓는 사람입니다.
달에서 지구를 보면 유일하게 보이는 축조물이 만리장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은 망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쌓은 바로왕도 망했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도 망했습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쌓은 크메르제국의 수리야바르만 2세도 망했습니다.
이처럼 “성을 쌓은 사람들은 모두 망했다”라고 아탈리 박사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길을 닦은 사람은 흥황(興況)했다”라고 했습니다.
◇ 로마 통치철학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시오노 나나미(Shiono Nanami)가 쓴 <로마인의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이런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 어떻게 로마가 천년을 넘도록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가?
• 로마의 풍부한 재정력 때문이었는가? 제아무리 막강한 재정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천년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 때문이었는가? 제아무리 막강한 군사력과 훈련 된 정예부대와 철 병기를 가졌다 할지라도 천년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로마의 탁월한 제도 때문이었는가? 제아무리 완벽하고 탁월한 제도라 할지라도 100~200년을 지나면 효율성이 떨어져 더 이상의 통치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로마의 강압적 지도력 때문이었는가? 지혜롭고 탁월한 지도력과 강력한 통솔력을 가진 사람의 힘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천년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로마로 하여금 천년의 영화를 누리는 막강한 제국이 되게 하였는가? 그것은 길(路)이였습니다. 길을 닦았기 때문입니다.
길이 혈맥이라는 것, 길이 재화가 된다는 것, 길이 힘이라는 것, 길이 삶의 동반자라는 것, 길이 영원하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던 민족이 로마였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길의 소중한 가치를 알았던 것입니다.
길의 인생, 길의 행복, 길의 문화, 길의 소중함을 알았고, 길의 편리함과 길이 주는 삶의 에너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길을 닦았던 것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 Lead to Roma)’라는 지배적인 통치수단으로서의 길을 예찬했습니다.
그러므로 길이 로마의 통치수단이었고, 힘이었고, 가치였고, 생활의 중심이었고, 문화였고, 번영의 수단이었고, 물류의 축이였고, 자산이었으며 천년의 영화를 누리게 했던 것입니다. 로마인의 대단한 예지였으며 길의 통치철학이였습니다.
◇ 길은 우리 삶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2014년 1월1일부터 개정된 법에 따라 주소가 번지에서 길 중심으로 전면 개정되었습니다.
또한 2021년 6월 9일부터 도로명 주소법 개정으로 인하여 기존 지상도로 뿐만 아니라 지하도로, 고가도로, 건물내부 통로까지 도로 명 주소를 부여할 수 있도록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도로명은 길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부여 되어서 찾기가 매우 손쉽게 되었습니다.
이제, 길이 삶의 중심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길이 생활의 편리함과 삶의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길이 삶의 소중한 가치를 함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각 자치단체장들이 가장 신경 쓰는 역점 사업 중에 하나가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둘레길을 만들고, 산책로를 정비하고, 숲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실길을 만들고, 해변길을 만들고, 비렁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남해안 끝자락의 작은 섬 금오도에 가면 비렁길이 유명합니다.
해안 단구의 벼랑을 따라 조성 된 길은 기암괴석들이 흩어져 파도와 어우러지는 천혜의 비경을 느끼는 환상적인 풍경의 길입니다.
이처럼 생활 속의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민의 생활공간으로서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길이 공원이 되고, 길이 사색의 공간이 되고, 길이 놀이터가 되고, 길이 마당이 되었습니다.
길이 삶의 소중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길과 함께 살아가면서 길의 편리함과 길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길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보화가 길 위에 있고, 길에서 행복을 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길이 때로는 험난하고, 가파르고, 협착하여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 길을 멈추지 않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쉬운 길이 없습니다.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고 인내하며 가야 합니다.
가는 길이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워도 멈추지 않고 극기상진(克己常進)의 자세로 목적지를 향해가야 합니다.
◇ 自願해 걷는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이런 힘든 길을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세계인들의 사랑받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입니다.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달하는 도보길입니다. 이 길은 800km나 되는 험난한 길이며 절대적 인내가 필요한 길입니다.
이 길은 멈출 수 없는 길입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럼에도 세계인들이 이 길을 걷기 위해 찾아와서 멈추지 않고 걷습니다.
이 길을 함께 걸으며 교류교통하며 서로 위로협력하며 세속적인 고뇌에서 벗어나 내적 사유와 자신됨의 정체성을 되찾으며 영성을 회복하는 경건한 길입니다.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길을 가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희락과 희망을 찾고, 삶의 용기와 자신감을 거머쥐며, 절망과 좌절의 어두움을 벗어던지고, 새 삶의 가치와 자존감을 회복시켜 소망스런 내일을 꿈꾸는 보화를 발견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자신만의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자신이 정한 목적을 향해 멈추지 않고 꾸준히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이제 2026년의 길이 열렸습니다. 어떻게 이 길을 가시겠습니까?
2026년의 길이 승리의 길이 되기 위하여 어떤 자세로 걸어가야 할까?
첫째: 마음의 각오와 기대, 다짐과 의지의 집중이 흔들림이 없는 꾸준함으로 걸어가야 승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꾸준함으로 길을 가고자 하지만 그 각오와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새로운 마음과 각오와 다짐으로 행복하게 이 길을 가고자 하지만 장애물과 유혹이 많습니다. 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행길이므로 상당한 부담감이 동반됩니다.
2026년의 길은 매 순간마다 새로운 선택을 요구함으로 말미암아 뇌의 전두엽의 소모를 빠르게 소진시켜 피로가 쌓이는 고통으로 인하여 익숙한 옛 습관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유혹이 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가는 결심과 각오가 흔들립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옵니다.
우리의 뇌와 신체는 익숙한 행동과 옛 삶의 방식으로 다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작용을 이겨내려고 할 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편안하고 익숙한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심리적이고, 정신적 회피가 아니라 신체의 자연적인 반응입니다.
이러한 신체적인 반응을 지혜롭게 통제하고 조절하여 새로운 길을 더욱 힘차게 나갈 수 있도록 뇌와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습관으로 되돌아가려는 마음을 단호하게 물리치는 결단이 매우 필요합니다.
편만하고 익숙한 옛 습관으로 되돌아가려고 반응하는 육체를 마음의 각오와 희망찬 기대와 결심을 의지적 결단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자신됨의 정체성으로 반응하는 신체의 작용을 통제하여 붉은 말의 역동적인 자세로 용기 있는 자신감으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승리의 길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둘째: 작은 패턴이라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관성의 자세로 행동한다면,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는 길을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길을 닦는 사람이다. 나는 길 위에서 행복을 찾고, 길 위에서 평화를 찾는다’라는 길의 가치적 자세로서 매일의 결심이 새로운 길을 가는 데 익숙함으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오늘 잠깐 흔들렸다면 내일 다시 결심하고 다짐하는 시작으로 그 길에서 일탈하지 않으면 뇌와 신체가 익숙함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의 뇌는 실수보다 반복의 누적을 더 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심과 다짐이 계속해서 지속하기만 한다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 평탄하게 열릴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갈 때는 작은 패턴이라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관성을 가진 자세가 자연스런 습관으로 자리 잡는 데 매우 필요합니다.
작은 패턴이라 할지라도 꾸준히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런 습관이 되어 몸의 익숙함으로 작용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새해 결심이 잠깐의 열정으로 끝나지 않고 붉은 말의 역동적인 힘처럼 힘차게 길을 달리는 일상의 리듬이 될 것입니다.
셋째: 목표를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길을 가기 위하여 조용한 반복에서 시작하여 몸에 익숙함으로 정착시켜야 합니다. 익숙함이 길의 동력입니다.
오늘 걷는 작은 한 걸음이 멈추지 않고 지속할 때 익숙함에 이르고 그 익숙함이 몸을 움직이는 데 매우 유용하고 길을 걷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길은 익숙함과의 싸움입니다.
익숙함으로 길을 간다는 것은 자신감 있게 걸으며 그 어떤 장애물과 유혹도 물리칠 수 있으며 삶을 아름답게, 영혼을 윤택하게, 육체를 강건하게 하여 당당한 자세로 승리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집중하고, 판단을 분명히 하는 의지적 자세로서 새로운 길의 행동을 반복적으로 지속할 때 신경회로의 길이 넓어지고 뇌와 몸이 익숙함을 느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역동적인 길을 가게 만들 것입니다.
길을 가는 데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치 말고 반복적인 노력으로 익숙하게 만들어간다면 승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성격이나 의지 탓으로 폄하하지 말고 결심과 다짐을 날마다 새롭게 반복하는 자세로서 익숙함을 만들어 몸에 익혀야 합니다.
우리의 뇌와 몸은 반복적인 것을 좋아하여 익숙한 삶의 습관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습니다.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답입니다. 익숙한 길이 좋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길을 예찬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길의 역사이며, 길이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길과 함께 살아왔고 길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우리는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2026년 후회 없는 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길에 대한 예찬의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밀가루를 샀습니다.
여인은 밀가루를 항아리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 길을 갑니다.
집으로 향해 길을 갑니다. 먼-길을 가는 동안 항아리 손잡이에 금이 가서 밀가루가 조금씩 새어 바람에 날렸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항아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헛수고였습니다. 여인은 울었습니다.
2026년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 이 길을 가야 합니다.
후회 없는 길, 수고가 헛되지 않는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이 길을 어떻게 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