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삶과 꿈> 어떻게 사는 것이 낫겠습니까?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6.02.08 13:18 수정 2026.02.08 13:18

▮필자= 장택상 가족신문.kr 발행인

입춘 즈음 늘 그렇듯 춥습니다. 텃밭에 마늘 몇 개를 꽂아놨더니 마음이 쓰였습니다. 워낙 한 뼘 떼기라 몇 포기 안 되지만, 싹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바순 콩대를 덮어줬더니 그것을 움막 삼아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간장양념할까 싶어서 서너 포기 뽑아봤더니, 아직 탯줄도 못 끊고, 뿌리에 마늘이 그대로 달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고향에서 어릴 때 기억이 났습니다. 어느 해였던가, 어머님께서는 당신의 조그만 화장대에 물컵을 놓고 통마늘 한 뿌리를 키우셨습니다. 제가 그 화장대에 올라가서 세이코 벽시계의 태엽을 감아줬었으니 아주 먼 어릴 때의 기억일 것입니다. 한겨울 수경재배를 하셨던 셈인데, 지금도 연초록 마늘 싹이 여러 갈래로 올라오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여리디 여린 마늘 새순 몇 포기 손에 쥐고, 옛날 기억도 나고, “더 크게 놔둘 것인데 괜히 뽑았구나!” 자책하며, 물컵에 꽂아서 다시 창가에 놓아뒀습니다.

우리 명절, 음력으로 설날이, 다가옵니다. ‘설날에 여러 어른께 세배 다녔다’라는 얘기는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민속처럼 되었습니다. 세배를 받으셨던 분들은 거의 다 돌아가셨고, 세배하러 다녔던 세대조차 ‘뒷방 늙은이 신세’ 돼버린 것이 벌써 오래입니다. 아마 그런 우리 민속적인 풍속은 아직도, 정치하는 사람들이랄지, 몇몇 직종만 유물처럼 남아있을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른께 세배 다니고 인사드리려 다닐 때가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남정네가 젊을 때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예비군 훈련받을 때가 좋아!”, “민방위 받을 때가 좋아!”가 그것입니다. 16살의 젊은이(고려대 철학과 김충열 교수, 1931-2008)가 출가하려고 월정사 한암 스님을 찾아갔었답니다. 스님께서 젊은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세상일은 황금을 쓸 줄 알 때 세상일이 되는 거고, 사나이는 늙기 전까지가 사나이다.”라고 하시더랍니다.

이 고장 출신 미당 서정주(1915-2000)는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하고, 11편 정도의 친일 작품을 썼답니다. 이에 대한 비난을 처음에는 “받은 대가가 없으니 괜찮다.”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 줄 몰랐다.”라고 솔직히 토로했답니다. 사실, 친일한 것보다도 미당이 더 욕을 얻어먹는 것은, 1980년대 초에,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때문일 것입니다. 미당을 좋아하는 사람은 ‘송시’를 읽지 말아야 합니다. 징그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미당을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여기고 있고, 시를 즐겨 읽습니다. 미당의 비겁은 어쩌면 심신이 연약한 우리 인간이 갖는 비극인지도 모릅니다. ‘윤석열 내란’에 연루된 사람들의 재판을 지켜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측은한 일입니다.

구정이 지나면 우리는 꼼짝없이 한 살씩 더 먹게 됩니다. 1월 1일이 지나면, 심정적으로나마, ‘아직 한 살 더 안 먹었어!’ 하다가도, 우리 설날 구정이 지나면 그렇게 버틸 수가 없습니다. 미당이 환갑 무렵에 쓴 시에 ‘다섯 살’이 있습니다. 시가 재미있습니다. 전체를 보겠습니다. “소는 다섯 살이면 새끼도 많고,/까치는 다섯 살이면 손자도 많다.//옛날 옛적 사람들은/다섯 살이면/논어도 곧잘 배웠다 한다.//우리도/다섯살이나 나이를 자셨으면/엄마는 애기나 보라고 하고/ㄱㄴ이라도 부즈런이 배워야지/그것도 못하면 증말 챙피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미당이 환갑쯤 되어서 무슨 장난끼가 발동해서 이 시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이’를 의식한 점은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내가 나이가 든 값을 잘하고 있는가?” 하며, 더러 궁금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이가 든 값 제대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면 잘 사는 것이지?’하며 더러 자문자답할 때가 있습니다. 소위 ‘내란내판’으로 어수선하기도 하지만, 세상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웬만하면 수십억 원씩이고, 고위 공직자들 재산도 보통 수십억 원씩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국제 정세 또한 점입가경입니다. ‘그린란드는 미국의 안보에 필요하다. 팔아라!’라고 한답니다. 누굽니까. 트럼프 대통령 아니겠습니까? 어른이 아이들 싸움을 말려야 되는데, 거꾸로, 아이들이 어른들 싸움을 말려야 될 상황입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 어느 때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모두 강대국의 힘 있는 사람들 탐욕 때문이 아닙니까. 불교 초기 경전에 ‘무주 무반연(無住 無攀緣)’이 있습니다. ‘한 군데 머물면 가라앉고, 아는 연줄을 이용하면 함께 엉키게 된답니다.’

봄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저는 집이 도시 변두리 시골이어서 봄이면 온갖 꽃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봄이 오면, 우리 동네 과수원에서 바람에 날려 떨어진 복숭아 꽃잎이 냇가를 타고 흘러가는데, 그것을 보고 누가 우리 동네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며 지냅니다. 청나라 때,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왕륜이 모은 <두시경전(杜詩鏡全)>은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 있는데, <두시언해>(중간본) 영인본, 이병주(李丙疇 1921-2010) 교수의 <두시언해초>를 참조하면서 두보시를 읽어보면, 깊은 묘미가 느껴집니다. 소위 ‘트럼프 리스크’나 ‘내란재판’ 때문에 올해 봄은 시끄러운 가운데 맞을 것 같습니다. TV로 면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 나이가 든 값을 못하는 모습이 저렇구나 싶고, 자칫 어중이떠중이 함께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시사전북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