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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n>김세옥 전주복된교회 담임목사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5.08.18 08:49 수정 2025.08.18 08:49

“교회는 성도들 전생애돌봄공동체 되어야지요!”
제자훈련․장학지원․세계비전투어 알차게 실현
성도 노후복지 책임…그룹홈․요양원까지 준비

“평생 목회의 마지막 비전은 교인들 한 명 한 명의 신앙 성숙과 삶의 복지까지 책임지는 목회에 두고 있습니다.”

전주복된교회 김세옥 담임목사가 정의하는 목회의 궁극적인 사명에 대한 언급이다. 그는 지난 수년간 독특하면서도 실천적인 목회 비전을 통해 지역 교회 사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왔다.
↑↑ 설교하는 김세옥 목사

◇ 지역 교회사역 새로운 패러다임 실천

​김 목사는 매년 추수감사절 또는 성탄절을 맞아 ‘1인 1명 전도’를 교회의 핵심 사명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새로운 믿음 가족을 초청하고, 복음의 문을 열어가는 전도 중심의 교회로 성장해왔다.

또한 모든 교인이 ‘2년 과정 제자훈련’(의무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여, 평신도 사역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김 목사는 “교회는 성도가 말씀 위에서 성장하고, 섬기는 자로 세워질 때 진정한 공동체가 된다”고 강조한다.

​전주복된교회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교인 자녀에 대한 전폭적인 장학 지원이다.
김 목사는 “교회의 재정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흘러가야 한다”며, 매년 남은 재정 전액을 교인 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특히 매년 1월 첫 주는 교회의 재정을 ‘0원’으로 초기화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또한 ‘세계 비전 투어’를 통해 청년들에게 글로벌 시야와 꿈을 심어준다.
매년 교인 자녀 10~15명을 선발해 미국·캐나다 40~50일 투어를 진행하며, 캐나다 현지 영어 교육과 함께 하버드대·MIT·버클리음대 등 명문 대학 탐방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간호사, 항공학 전공자, 심리상담사,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인들이 배출됐다. 현재도 여러 청년들이 캐나다에서 취업하며 삶의 터전을 넓히고 있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는 다음세대를 위한 비전을 준비했다면, 이제부터는 황혼을 맞이하는 교인들의 노후를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 나의 마지막 목회 소임”이라고 밝힌다.

복된교회는 현재 9,800평 임야 중 1,500평의 허가를 받아 벌목·토목 공사를 진행 중이다. 5개 구역으로 분할 설계를 마쳤으며, 그중 200평에 도로 및 기반 공사를 완료한 후 ‘노인 그룹 홈’을 시작으로 교인 복지요양원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
↑↑ 한때 유망 축구선수였던 김세옥 목사

◇ 탄탄대로 눈앞서 무너진 축구선수 꿈

김 목사는 한때 유망한 축구선수였다.
초등학교 5학년, 임실군 초등학교 축구대회 출전을 위한 선수 모집에서 “훈련 후 자장면을 준다”는 말에 이끌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축구를 시작했다.
오수초, 정읍호남중, 이리고, 전북대 사범대를 거쳐 서울시청 축구단까지 12년간 선수생활을 이어오며 한 번도 후보선수로 벤치를 지킨 적이 없었다. 그는 모든 감독과 코치들에게 인정받는 탄탄대로를 걸으며 성공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러나 1987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세계축구대회를 앞두고 열린 서울시청 신입생 환영식에서 불의의 폭력 사건에 휘말려 용산경찰서 유치장과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대표 선발의 꿈은 눈앞에서 무너졌고, 그는 절망 속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때, 쇠창살 사이로 들려온 찬송가는 그의 마음 깊숙히 울렸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가사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름처럼 들렸다.

어린 시절 폐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어머니의 기도로 살아났던 기억, 추운 새벽 어머니 손을 잡고 교회에 가던 기억, 논두렁을 비추던 신비한 빛과 전도지 돌리던 순간 등등이 영화의 한 장면 스쳐 지나갔다.
“하나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유치장에서 처음으로 무릎 꿇고 부르짖는 기도가 터져 나왔다. 이후 그는 구치소에서 한 달여 조사를 받은 뒤 석방되었지만, 그 경험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 광야의 4년 훈련…목회자로 부름받아

석방 이후 신앙생활을 시작한 김세옥 목사는 오산리기도원에서 통회자복의 회개를 경험했다. 추계 실업축구대회를 앞두고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였고, 기도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거듭남을 깊이 체험했다.

그는 1989년, 창단을 앞둔 일화 천마프로축구단과 2년 계약(계약금 4000만원, 연봉 2400만원)을 체결했으나, 통일교 관련 종교교육 문제로 계약을 파기하고 광명 부활의감리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40평 지하 예배당에서 의자를 침대로 삼고, 눈물의 찬양과 기도로 ‘광야의 4년 훈련’을 거쳤다.

​김 목사는 청주 좋은교회 초청 간증을 시작으로 작은 시골교회부터 대형교회, 나환자촌, 소년원까지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다.

어느 날 서울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타던 중,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참으로 너를 사랑한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너를 선택했단다.”
그 순간 전철 안에서 그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주님의 사랑 고백은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전철 안에서 찬양하고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평신도 사역자의 꿈을 넘어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받아들였다.
​1990년 성남 단대동 달동네에서 새암교회를 시작으로, 1991년 오수산돌교회를 개척하고, 1998년 전주원천교회를 세웠다. 2001년에는 전주복된교회를 개척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나의 인생은 주님의 손길로 재창조된 인생”이라고 말하는 김 목사는 “주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목회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굳게 다짐한다.

김세옥 목사는 “교회가 단지 예배와 선교에 머무르지 않고 성도들의 전생애를 돌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21세기형 목회의 새로운 모델을 세워가겠다”는 포부를 전했다.<전북기독신문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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