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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世上萬事> 전라도 女子 강옥순의 맛있는 손맛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5.08.14 11:10 수정 2025.08.18 08:42

▮필자: 최공섭 프리랜서PD

맛있는 전라도 손맛을 가진 한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이름 강옥순(1932~2025). 나의 어머니.
 
↑↑ 작고한 강옥순님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광복을 지나 6.25전쟁까지 참아내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엄혹한 세월까지 온전하게 지켜낸 여자. 한국전쟁 때 자신이 좋아하던 작은 오빠가 임실과 순창 일대 회문산 남부군 빨치산이 되고, 큰 오빠는 집안을 지켜야 할 방안으로 국군에 입대하는 -지금 생각해도 어떤 군대가 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강요되던 시절- 쌀밥은 커녕 고구마나 보리밥이라도 든든히 배를 채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시절을 살아낸 여자다.
그러나 그 가난하고 엄혹한 현실 속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맛있고 푸짐하고 밥상을 차려낸 사람들이 바로 전라도 여자들이다. ‘누가 뭐래도 먹는게 장땡이고 양반이야’라는 전라도 여자들이 차려낸 밥상으로 바로 당신의 자식들과 가족은 물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며 밥심이 아닌가?

# 세월 비켜간 김치, 김치냉장고에 여전히

끼니마다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시던 그 여자 역시 시간을 거슬릴 수 없어 홀연히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남겨준 밥상 위에는 아직도 그녀가 목숨처럼 잔소리를 해대며 장만해 놓은 김장김치가 여전히 김치냉장고에 가득 남아있다.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누구든지, 심지어 미역이나 멸치 등을 팔러온 순천댁, 목포댁 아줌마까지 배고파보이는 누구든 따뜻한 시래기국이라도 푸짐하게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 여인네의 손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시한에는 김장이 가장 큰 양석여!” 추운 겨울에 가장 중요한 양식이 되는 김장, 작년 겨울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구순이 넘는 어머니가 여전히 진안배추 100포기가 넘는 김장 고집을 피우셨다. 거동도 불편하시지만, 스무살에 시집와 70년이 넘는 평생을 해온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걸 빠트릴 수 없었을 터다.
“김치를 어떻게 사다가 먹는다냐. 나도 먹어봐서 아는디 한번은 먹을만 해. 두 번짼 젓가락이 안 가드라. 시한내 어떻게 살라고 그려!”
김장하는 것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다. 앞내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고/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들이요 바탕이 항아리라”(조선시대 ‘농가월령가’ 중에서)
마땅한 겨울 채비로 김장은 우리의 오랜 먹거리 습속이니 하루 아침에 슈퍼나 시장에서 사다 먹는 김치로 겨울 끼니를 때우기는 구순의 전라도 여자인 어머니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 귀향, 비로소 ‘어머니의 김치 맛’ 재발견

고등학교 졸업하자 마자 일찍 부모를 떠나 서울살이를 하는 중에 잊어버렸던 어머니의 진한 전라도 김치맛을 5년 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게 된 귀향에서부터 그 소중한 김치맛을 다시 찾아내게 되는 행운을 가졌다.
“고랭지서 키운 진안 배추가 좋아야!”하시며 수십 포기의 김장배추, 무를 단골 장사꾼으로부터 사들이고 최소 이태 전에 사놓아 간수를 잘 뺀 신안소금으로 배추절이기에서부터 꼼꼼하게 준비하시는 김장은 가장 먼저 젓국달이기부터 시작하셨다.
그냥 편하게 시장에서 파는 멸치액젓이나 참치액젓, 까나리액젓 등 좋은 상품이 널려있지만, 기어코 그 해 봄에 사서 장독대에 담아둔 황석어젓을 달이는 것부터 시작하셨다. 마당에 솥을 걸고 한나절 이상 장작불을 때 졸이는 젓국을 다시 생선 뼈같은 것을 걸러내기 위해 밤새 채에 바쳐 맑은 액젓을 만드셨다. 황석어젓국을 달이는데, 그 고약한 냄새는 온동네에 진동해서 걱정이 되었지만 어머니의 오래된 김장 준비를 그저 동네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구수하네!’라며 덕담까지 던지며 눈감아주셨다.
여기에 미나리 갓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도 매운 것과 순한 것, 참깨 들깨와 같은 향미가 가득한 부재료까지 깐깐히 준비하고 간수 뺀 신안소금과 서해안 황석어젓국에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추는 전라도 어머니의 김치맛이란! 다시마 마른 새우, 디포리와 푸짐하게 양파와 대파뿌리까지 넣어 고아낸 육수에 찹쌀죽을 섞어 버무리는 김장김치는 전라도의 산과 들, 바다에서 나는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익어가는 종합식품 같은 겨울양식이다.
내게 있어 귀향은, 참으로 거창한 일 년 먹거리 전라도 김치가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소중하고 귀한 어머니의 조촐한 행사였다.
이렇게 구순이 넘는 어머니가 보여준 김장을 시작으로, 유구한 세월 간직되어온 전라도 음식문화는 더욱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실감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 1970년대 김장풍경

# 제철 ‘지’를 무쳐내놓는 전라도 어머니들

“제 아무리 서울이 좋아도 오지게 비싸기만 하지 젓가락은 댈만한 음식이 많지 않어야!”라고 투덜거리는 전라도 어머니들의 핀잔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전주비빔밥을 시작으로 눈이 휘둥그레하게 하는 푸짐한 전주한정식 한 상차림,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수란이 곁들여진 전주콩나물국밥, 넉넉한 막걸리 한 사발에 따라 나오는 수십여 가지 반찬 안주는 모두 고집스런 전라도 여자들이 지켜 누천년을 이어온 넉넉한 전라도 음식문화다. 우리의 어머니, 이모, 누이들이 만들어내는 풍성하고 알찬 먹거리 전통이다.
우리네 밥상 기본인 김치만 해도 때마다 철마다 다양한 식재료를 써서 밥상에 올린다. 겨우내 시어진 김장김치가 입에 물릴 봄철이 되면 논둑의 냉이를 캐서 쌉싸름한 냉이무침으로 입맛을 돋우고, 고들빼기김치로 입맛을 살려낸다.
‘김치’는 보통 일반명사지만, 전라도 어머니들은 쉽게 ‘지’라는 고유명사로 부른다. 배추지, 무수지(무우김치), 고들빼기지 등이 그것들이다. 여름철 얼가리배추가 나오면 얼가리배추지에 이어 알타리무수지, 향채가 진한 깻잎지, 고추잎을 따서 담는 고춧잎지, 고구마순을 다듬은 고구마순지 등 지천에 널린 다양한 채소나 식자재로 김치, 바로 ‘지’를 담아 먹는 게 전라도 여자들이다.
본래 전해져 오는 전라도 한상차림은 밥, 국, 김치, 장류를 기본으로 추가되는 찬 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12첩으로 나뉜다.
보통 3첩은 서민밥상, 5첩은 중산층, 7첩․9첩은 양반밥상으로 민간에서는 9첩이 최고이고, 궁중 수랏상은 12첩으로 차렸다. 이런 밥상에 전주사람들의 탁월한 미각이 보태져 독특한 전라도 음식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전라도 여자들이 생명처럼 여기며 지켜온 음식문하 유산은 가장 서민적이고 음식의 기본에 충실한 전주비빔밥을 만들어냈다.
1970년대까지 일반 서민들은 제대로 육류를 먹지 못했고, 잔칫날처럼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고기요리는 흔히 접하지 못하였던 시절에는 들이나 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산나물에서부터, 특히 고기류의 단백질 대신 콩을 사용한 콩나물 두부같은 식재료를 통해 푸짐하고 간편한 소위 ‘들밥’, ‘일꾼밥’이라고 불리는 비빔밥을 만들어냈다.
비빔밥 한 그릇에는 콩나물, 시금치, 무나물, 취나물, 당근 등 계절별로 나는 수십 가지 종류의 나물들에 참기름, 들기름을 쳐 고소하게 무친 나물반찬을 밥 위에 얹고 ‘밭 고기’라는 콩으로 만든 된장, 고추장 한 숟갈이 들어간다. 여기에 화룡점정 달걀부침 하나를 얹어 척척 비벼 먹으면 아무리 가난한 일꾼이라도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식사가 된다.
격식을 갖춘 양반밥상에 못지 않는, 매우 민주적이고 간편한 식문화인 비빔밥은 그렇게 오랫동안 전라도 여자들의 손맛으로 면면히 이어져 만들어온 대표 음식이다,

# K푸드 대표 ‘김치’ 나날이 수출액 늘어

그리고 특히 전주사람의 또 다른 서민음식으로 콩나물국밥이나 순대국밥같은 영양이 충분하면서도 간편한 국밥도 푸짐하게 만들어 내었다.
가장 대표적인 나물인 콩나물부터 녹두나물, 고사리, 고추잎 나물, 곰취. 근대. 더덕, 돌나물, 부추, 두릅, 머위, 명아주, 쑥, 삼나물, 어수리, 고들빼기 등 전라도 산과 바다 평야에 지천에 널린 나물이 전라도 음식문화 먹거리 재료다.
이러한 다양하고 맛갈나는 한상차림은 세계의 어떤 밥상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미식의 나라 프랑스 미슐랭 식탁에 오르는 요리나 오즉하면 ‘책상다리 빼고는 다 먹는다’는 중국요리도 부럽지 않은 한국의 음식문화임을 세계가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했다.
한국 음식문화 중심에는 끈질긴 전라도 여자들의 손맛이 그 중심이 된다.
2008년 미국의 유명한 건강 연구지인 ‘헬스지’는 스페인 올리브유, 그리스 요구르트, 인도 렌틸콩, 일본의 낫토와 함께 한국의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다. 또한 2013년 12월 5일,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김치가 신체면역 증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김치를 섭취하는 외국인이 부쩍 늘어났다. K팝, K드라마에 이어 K푸드의 대표적 음식으로 김치는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고, 어떤 나라에서도 김치를 찾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김치 수출액은 2021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래 성장세를 유지하고, 수출액은 2016년 7900만달러(약 1062억원)에서 2023년 1억5560만달러(약 2091억원)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출국 역시 92개국으로 사상 최대다.
국내 포장김치는 국내 대기업들이 일찍부터 뛰어들어 2021년 기준 포장김치 시장은 대상㈜이 42%의 점유율로 1위, CJ제일제당이 38%의 점유율로 양분하고 있다. 대상㈜은 브랜드 ‘종가집’으로 1988년부터 시장에 진출했고, CJ제일제당은 2000년 하선정종합식품을 인수하면서 시장에 진출, 비비고김치로 일찌감치 수출과 국내 유통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풀무원 김치, 동원의 양반김치, 농협 공동브랜드 아름찬김치, 아워홈 김치, 홍진경 더김치, 진안부귀농협 마이산김치, 안동 학가산김치 등 다양한 김치상품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팔리고 있지만, 구순의 전라도 어머니 입맛에는 쉽게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막강한 자금력과 설비, 이런 마케팅으로도 잡아낼 수 없는 틈새가 바로 전라도 어머니들이 만든 것, 우리네 ‘전라도 김치’ 아니가? 전주시내 어떤 음식점이든, 이러한 상품화된 포장김치를 내놓는 식당은 많지 않다. 그것은 최소한으로 전라도 어머니들의 음식에 대한 차원이 다른 입맛과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 버무려낸 김장 배추김치

# ‘전라도김치․전주지’ 공익 플랫폼 만들자

이런 고유한 맛과 멋을 지닌 전라도 김치를 소비자에게 직접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현재와 같이 대기업의 거창한 자본과 기술로도 따라올 수 없는 전라도 김치의 ‘맛과 멋을 버무린 전주김치’나 ‘임실 아삭아삭김장김치’, ‘진안 부귀농협 마이산김치’부터 내 어머니들이 소박한 김치까지 원하는 누구에게나 그 맛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대량생산되는 김치가 아니라, 집집마다 다른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과 전라도 아저씨, 전주 누이, 진안 삼촌들의 정성과 비법이 담긴 김치를 ‘전라도 김치’라고 해도 좋고 고유어로 ‘전주지(전주김치)’라는 SNS 플랫폼을 만들어 누구에게나 함께 맛보고 즐길 수 있도록 각 가정의 식탁에 전해줄 수 없을까.
전북특별자치도나 전주시가 주관하여 ‘전라도 김치’, ‘전주지’의 공익적 무료 SNS 플랫폼을 개설해보자. 누구나 개인 맞춤형 공익 김치서비스 플랫폼에서 집집마다 마을마다 각기 색다른 맛을 내는 김치의 맞춤거래를 할 수 있는 공익 플랫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단순히 중개, 유통하는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 서비스 업체는 수수료를 포함해 배달료까지 구매가의 30%이상을 소상공인에게 부담시키는 불합리함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유력한 지방자치단체가 무료 SNS 서비스 플랫폼을 열어 부당한 수수료 없이 운영되는 ‘전라도김치’ 내지는 ‘전주지(김치)’ 무료공익 SNS플랫폼을 열어 운영하는 것이 전라도 김치를 누구에게나 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런 공익 서비스는 일년 내내 모바일 클릭 한 번으로, 전화 한 통으로 우리 어머니들의 전라도 맛있는 김치를 나눌 수 있다.
현재 기존 택배 시스템이나 오토바이 배달 서비스로도 필요한 때에 별도 대행 수수료 없이 빠르고 쉽게 전할 수 있지 않은가? 대기업의 종가집김치나 비비고김치가 아니라, 우리 전라도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천년의 맛을 지켜온 전라도김치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진짜 맛나야, 우리집 지(김치)가 최고여!” 우리 어머니의 정성과 감탄을 담아낸 ‘전라도김치’, ‘전주지(전주김치)’를 말이다.
필자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전라도 여자, 내 어머니 강옥순의 맛있고 푸짐한 밥상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오늘 전라도 여자들이 만들어낸 전라도의 맛, 우리 아이들, 손자들까지 언제까지나 전해 맛보게 할 수 있는 맛있고 건강한 전라도 김치와 푸짐한 밥상을 언제까지나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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