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호에 이어서>>
어제 하루를 쉬고 회의가 속개되었다.
밖에 진눈깨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매섭게 부는 추운 날씨였지만 동물들의 표정은 첫날보다 한결 밝아 보였다.
의장인 호랑이가 자리에 앉았다.
“여러분 어제 하루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푹 쉬셔서 그러신지 모두 신수가 훤하십니다.
저는 오전에 휴식을 취하고 나서 침팬지님, 부의장님과 함께 첫날 발표하신 내용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저 역시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전주는 처음인지라 시내 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홀로 시내를 배회하면 사람들이 놀랄 듯하여 숙소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이곳 사람들 표정이 온화한 것으로 보아 인정 많은 고장이라 느꼈습니다.
검독수리님은 상공을 날며 전주 시내 전경을 구경하셨다고 들었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아! 예, 하늘에서 본 전주는 고즈넉하고 안정감 있어 보였습니다.
응달에는 눈도 많이 쌓여있어서 마치 제 고향이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여기 온 김에 근처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갈까 생각합니다.”
독수리의 설명에 다들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2일차 주제발표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멀리 북대서양에서 참고래님이 보내오신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영상 틀어주시죠.”
타원형 회의 테이블 안쪽에 설치된 4대의 대형 TV 모니터가 켜지고 화면에 짙푸른 바다가 넘실거렸다.
모처럼 시원한 영상을 보고 있는데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아도 20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로 등과 옆구리는 검정색에 가까운 회색에 배 쪽이 눈부시게 하얀 고래가 미끄러지듯 멋지게 유영하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등에서 한줄기 물줄기를 뿜어내고 나서 참고래가 발언을 시작했다.
“여러분 저 참고래 영상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회의장에 참석해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저는 그곳에 갈 수 없기에 주최측의 도움을 받아 영상으로 대신하게 되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세계 금수회의에 의견을 낼 자격이 되는지 궁금하셨을 겁니다.
고래는 돌고래와 함께 포유동물이라서 짐승에 속하기 때문에 저 역시 이번 세계 금수회의에 발표자로 초청을 받은 것 같습니다.”
참고래는 말을 하는 사이사이 해면에 올라가서 길게 호흡을 하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고래는 인류보다 훨씬 이른 무려 5천만년 전 지구에 출현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40여 종의 고래가 분포하고 있는데요, 그런 고래들의 앞날에 커다란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저희 참고래 같은 대형고래들이 가장 먼저 멸종위기를 겪고 있지만 모든 고래에게 비슷한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고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과거에는 고래사냥으로 개체수가 급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래를 잡아서 등불을 밝히기도 하고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40여 년 전 국제적으로 고래잡이를 금지하였지만 일부 국가에서 생업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고래잡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위험 요인은 바로 어구에 의한 얽힘 사고입니다.
예전과 달리 어선은 대형화되었고, 선단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그 어선들에 의해 바다에 버려진 어구들이 고래 지느러미에 얽히게 되면 헤엄치는데 어려움은 물론 호흡마저 어렵게 되어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다음으로 대형선박들에 의한 충돌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대형선박에 의한 소음공해로 고래끼리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무분별하게 바다로 버려지는 산업공해 물질이나 농약, 그리고 플라스틱 폐기물 같은 쓰레기에 의한 위험입니다.
산업현장에서 배출되는 유기물질은 우리 체내에 축적되어 번식 장애까지 초래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투기되어 분해된 미세플라스틱이나 PCB 물질은 먹이사슬을 통해 결국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지만 이에 대한 문제해결 의지는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같은 문제점들이 부각되어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온 우리 고래들이 앞으로 수천만년이 더 지나서도 바다를 누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럼 참고래 이만 인사드립니다. 여러분 이곳에 한번 놀러 오시면 용궁에서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참고래는 한쪽 눈을 찡긋하고 푸른 바다에서 한 바퀴 빙 돌더니 화면에서 사라졌다. 고래가 일으킨 하얀 물거품도 곧이어 사그라졌다.
TV 모니터가 꺼지고 의장 호랑이가 마이크를 켰다.
“여러분 참고래님의 영상 편지 잘 보셨지요?
참고래님 유머 감각도 있으시네요. 우리가 바다에 가지 못한다는 것 잘 아시면서 초대까지 하시고 말이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바다생물이나 육지 생물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이들의 폭력도 문제지만 선한 이들의 침묵과 무관심이 더 문제라고 말이죠.
서서히 다가오는 위기들이 당장 우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침묵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뜸부기님께서 발표하시겠습니다.” >9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