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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新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③ 모원단장母猿斷腸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5.03.12 09:30 수정 2025.03.12 09:30

▮필자= 박인숙 전 전북중소기업벤처청장

<2월호에 이어서>
자원봉사자들이 다음 발표자에 맞춰 통역시스템 설정을 끝내고 회의장이 정돈되었다.
“자 지금부터 원숭이님께서 발표를 시작하시겠습니다.” 부의장 반달가슴곰이 말했다.

와인색 나비넥타이를 맨 원숭이가 의자 위에 올라앉더니 앞발로 넥타이를 바르게 하고 나서 정수리와 볼을 두어 차례 쓸어내린 다음 마이크를 자기 앞으로 당겨놓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동남아시아에서 온 원숭이 인사드립니다. 발표를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한 영상 하나를 시청하시겠습니다.”
긴 타원형으로 배치된 회의 테이블 안쪽에는 네 대의 커다란 TV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니터 화면이 켜지고 경쾌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TV 화면 속에는 야외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원숭이들의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 앞쪽 계단식 관람석에는 구경꾼이 제법 많이 있었다.
공을 굴리는 원숭이가 있고, 재주넘기를 하는 원숭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원숭이도 있었다. 다음에는 원숭이 여럿이 나와 단체로 줄넘기 묘기를 하기도 했다. 객석에서는 한 원숭이가 모자를 거꾸로 들고 사람들 앞을 걸어 다니자 해외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자 속에 돈을 던져넣기도 하였다.
한참 있으니 떠들썩한 공연이 끝이 났다.
함께 공연을 하던 훈련사가 원숭이들에게 목줄을 채우고 끌고 가서 우리에 집어넣었다. 원숭이 우리는 원숭이 한 마리가 겨우 들어앉을 좁은 크기로 사방이 쇠창살로 되어있었다. 몇몇 우리에는 어린 원숭이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큰 원숭이가 쇠창살 안에 있던 어린 원숭이 뒷 목덜미를 잡더니 쇠창살에 부딪히는 동작을 반복하였다. 어린 원숭이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큰 원숭이는 그치지 않았다. 큰 원숭이는 분노와 슬픔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소리를 질렀다.
비장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영상은 끝이 났다.
말없이 시청하던 몇몇 동물들 눈가에는 눈물 흔적이 남아있었다. 회의장 안에는 침묵이 흐르고 내가 노트북PC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원숭이가 다시 마이크를 켰다.
“여러분 어떻게 보셨는지요?
영상 속 큰 원숭이는 어미이고 어린 원숭이는 그 새끼였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자신의 새끼도 나중에 자신처럼 쇼에 동원되는 원숭이가 될 것을 생각하며 그러느니 차라리 어렸을 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그토록 잔인한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다른 동물들 모두 같겠지만 원숭이 어미의 자식 사랑은 각별합니다. 오죽하면 모원단장(母猿斷腸)이라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모원단장이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진다는 말입니다.
옛날 중국 진나라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나라를 치려고 양쯔강 계곡을 배로 지나갔습니다. 이때 강기슭 덩굴줄기에 새끼 원숭이가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병사들이 사로잡았답니다. 이를 본 어미 원숭이가 슬프게 울부짖으며 배를 쫓아오더니 배 위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는 배에 오르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배 안에 있던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는 큰 슬픔으로 창자가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원숭이 어미의 사랑입니다.
인간들은 돈벌이를 위해 원숭이를 붙잡아다 호된 매질을 하며 원숭이를 훈련 시킵니다.
관광객들은 그런 혹독한 훈련과정이나 열악한 생활 모습은 모른 채 그저 원숭이들이 무대에서 재롱을 떠는 모습을 보며 웃고 즐깁니다.
이런 모습들이 예전 일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도 원숭이쇼는 성행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굳이 동물쇼 아니라도 얼마나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습니까?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동물들을 데려다가 무대에 올리는 그런 일은 멈추었으면 합니다.
적어도 자기 새끼만은 자신이 겪어온 가혹한 환경에 내몰리게 하고 싶지 않은 어미 원숭이의 절규를 인간들이 알아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일부 국가에서는 어린 원숭이를 잡아다 코코넛 따는 훈련을 모질게 시키고 있죠. 원숭이를 훈련 시켜 사실상 코코넛 따는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도 코끼리님처럼 가벼운 이야기도 덧붙이고자 합니다.
인간 세상에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더군요. 그리고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하는 사람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위험하죠, 어린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린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훈련을 합니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신념 같은 건 헌신짝 버리듯 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죠.
끝으로 인간과는 많이 닮았다고 하는 우리 원숭이들이 부디 원숭이로서의 품격있는 삶을 살도록 인간들이 생각을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으로 저 원숭이의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원숭이는 마이크를 끄고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나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동물들이 그제야 소리를 내며 크게 숨을 쉬었다.
반달가슴곰이 천천히 몸을 움직여 마이크를 켰다.
“원숭이님! 어머니 원숭이의 애끓는 사랑에서 착안하여 발표해주신 내용 잘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원숭이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럼 다음 순서인 독수리님 발표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갖겠습니다.”<4월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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