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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축제

고창국화축제 어떻게 할 것인가

신영배 기자 입력 2009.12.31 17:52 수정 2009.12.31 05:52

'발전적 계승' 해법 서둘러야

기로에 선 고창국화축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전국적인 민간주도 축제에서 불과 1년 만에 형식적인 행정주도 행사로 전락한 고창국화축제가 문화자산의 사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축제가 창출했던 막대한 파급효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운데 발전적 계승을 위한 논의가 실종돼 있는 것.

이 와중에 축제의 변질을 부른 민간과 행정의 불협화음은 오히려 증폭돼 고창국화축제의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축제로 정착하기 일보 직전에 고사상태에 빠져버린 고창국화축제는 과연 조종을 울리고 말 것인가.

고창군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전북도민들이 하루 빨리 복원을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분출시키고 있다.


<명품축제에서 짝퉁행사로 전락>

1년 만에 초라하게 전락한 고창국화축제는 일제강점기인 80여 년 전 한 구한말 문화재에 대한 양심적인 일본인의 비장한 조곡을 연상시킨다.

총독부 건물을 짓기 위해 광화문을 헐기로 결정했을 때 일본의 민예연구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비장한 어조로 ‘사라지려 하는 한 조선 건축물을 위하여’라는 글을 기록했다.

“광화문이여, 광화문이여! 너의 목숨이 이제 경각에 달려 있다…(중략) 가혹한 끌과 무정한 망치가 너의 몸을 조금씩 파괴하기 시작할 날이 이제는 멀지 않았다…(후략)”

실제 유형과 무형이라는 점만 달리할 뿐 고창국화축제의 현주소는 일제강점기 광화문의 운명과 조금도 다름 없다.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일군 명품축제에서 순식간에 짝퉁행사로 초라하게 전락한 모습은 오히려 더욱 비극적인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는 고창국화축제의 1년 전의 가을과 올 가을을 비교하면 뚜렷하게 확인된다.

지난해의 경우 고창읍 석정온천지구 나대지 30만 평에서 일제히 피워낸 꽃송이는 무려 300억 송이에 달했다. 반면 부안면 질마재로 개최장소를 옮긴 올해는 8000평에 불과해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해졌다.

방문객의 규모가 급감한 것은 당연한 현상. 작년 120만 명에 달했던 완상객이 올해는 숫자를 파악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행사 기간 또한 지난해 한 달에서 올해는 일주일로 단축돼 서둘러 종료됐다.

축제장에서 터져 나온 불만도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종전의 모습을 기대하고 찾았던 방문객들이 개최지 변경사실도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어렵게 발걸음을 옮겨 찾은 질마재 축제장에서 이구동성으로 실망의 목소리를 터뜨렸다.

<민간주도로 방문객 120만명 유치>

고창국화축제가 축적한 전국적인 평가와 지역소득효과의 상실을 알게 되면 문제의식은 더욱 심각해진다.

고창국화축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축제연구사례’로 거론될 만큼 국내에서 독특한 이력과 폭발적인 발전과정을 기록했다.

고창국화축제는 국내에선 거의 사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순수하게 민간에 의해 기획되고 육성됐다. 축제를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은 지역에서 양돈업에 종사하고 있는 정원환 고창국화축제전위원장(53).

향토시인이기도 한 정 위원장이 ‘국화 옆에서’와 ‘선운사 동구’ 등 국민적 애송시를 읊은 미당 서정주가 고창출신인 점에 착안해 시재인 ‘국화’를 소재로 시인의 고향이자 선운사 동구의 무대인 ‘질마재’ 인근 6000여평에 국화를 식재했다.

이어 이듬해 재배면적을 미당 묘역 및 질마재 일대 4만5000평으로 확대하고 첫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단숨에 18만 명의 관광객을 끌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고창국화축제가 석정지구 나대지로 옮겨 온 것은 다시 1년 뒤인 2006년. 정 위원장이 본격적인 축제를 구상하고 730명의 부지 소유자들로 조직된 지주조합으로부터 나대지를 빌어 1000여 색상을 띤 형형색색 300억 송이의 국화를 피워내 56만 명의 방문객을 맞았다.

이렇게 급신장을 거듭한 방문객이 지난해는 무려 120만 명. 이는 저마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수십 개의 도내 축제 가운데 130만 명을 기록한 김제 지평선 축제에 이어 두 번 째로 많은 관광효과를 창출한 것이다.

군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잇달면서 축제전위원 수가 650여 명에 달했다. 이 동안 정 위원장이 국화축제 육성을 위해 쏟아 부은 비용은 모두 22억 원. 한 푼의 예산도 지원받지 않고 오롯이 사재를 털어 조달했다.

축제로 인해 지역이 누린 파급효과는 계량을 불허할 정도로 막대했다. 방송과 중앙지 등 언론이라는 언론이 다투어 축제를 보도해 고창군의 지역브랜드를 향상시켰다.

직접적인 주민소득효과 역시 체감 수준으로 치솟았다. 고창읍의 주유소는 몰려든 차량들의 주유로 재고가 바닥나는 믿지 못할 단경기를 누렸고 고창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점인 풍천장어 식당 주인들은 축제가 계속되는 한 달 동안 2~3배의 매출액을 올렸다고 증언한다.


<대표적인 ‘저비용 고효율’ 축제>

고창축제가 띠고 있는 문화적 자산 가치는 몇 가지 사례비교를 거치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비교사례가 전국적인 명소로 떠오른 전주한옥마을이다.

전주시가 1910~192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1000여 채의 한옥을 주목해 도시재생사업에 나선 것은 2002년.

여기에 지난해까지 7년 동안 예산만 680억 원을 투입했으니 한 해 평균 100억 원에 가까운 세금을 쏟아 부은 셈이다. 자영업자들이 투자한 민자까지 합하면 1000억 원에 가까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대표적인 도심 한옥밀집지로 명성을 얻었지만 전주시가 추산하는 2008년 연간 방문객은 겨우 100만 명 안팎에 그쳤다.

전주시가 행정력과 재정을 집주해 육성한 60만 도시의 문화유산 방문객이 한 개인이 육성한 축제의 한 달 방문객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대의 여름 피서지인 부산해운대도 비교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연 인원 해수욕객이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지만 부산 자체 인구가 350만 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인구 7만 명의 고창국화축제의 성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해외의 대표적인 축제와 비교해도 고창국화축제의 경쟁력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다. 영국 리버풀은 산업혁명 시대 교역의 중심지로 한 때 인구 100만 명을 기록하며 번성했다가 주력산업이 사양화 되자 인구가 50만 명으로 쇠락했던 도시.

상가는 물론 주택마저 텅텅 빌 정도로 유령화 된 리버풀이 활기찬 도심재생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비틀즈의 고향이라는 문화테마 덕택이다.

비틀즈를 테마로 한 문화산업에 유럽연합과 영국정부가 5조원, 민간부문에서 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기획됐다.

비틀즈 추모열풍을 촉발시킨 민간기업 ‘캐빈 리버풀 & 컴퍼니’가 주최하는 비틀즈 축제에는 세계 250여 밴드가 참여한 가운데 하루 최고 25만 명의 관광객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 축제 방문객이 한국의 농촌 소도시 고창에서 개최되는 국화축제 휴일 관광객의 2~3배에 불과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전국 최고의 경쟁력 갖춘 문화테마>

세계가 국가 단위는 물론 지역 단위로 문화자산을 중시하는 도시행정의 흐름을 알게 되면 스스로 지역자산을 폐기하는 고창의 모습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문제의식으로까지 확장된다.

종전의 국가 간 경쟁이 도시 간 경쟁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은 세계의 공통된 현상. 치열한 무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각 도시들이 가장 주목하는 테마가 문화라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 없다.

로마나 파리, 북경 등 풍부한 역사적 문화유적을 보유한 도시야 말할 것 없고 테마가 없는 도시들은 상징물을 개발하고 육성해 세계에 마케팅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실제 이런 문화 테마 개발의 노력들이 성공을 거둬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례들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문화 테마에는 유무형이 없음은 물론이다.

런던은 정통뮤지컬로 연간 수백만 명의 발걸음을 끌고 스페인 바스크주는 1997년 1700억 원을 투입한 구겐하임미술관 하나를 가지고 세계인을 상대로 연간 4300억 원의 입장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자산의 체계적인 관리도 활기를 뗘 뉴욕은 ‘I ♥ NY’라는 브랜드마케팅 전략을 통해 연간 40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고창국화축제를 이들 세계적인 도시와 비교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하지만 고창국화축제에 쏟아지는 찬사는 지역의 문화테마로써 성장 잠재력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와 관련 전국적인 생태축제로 성장해 엑스포로까지 발전한 함평 나비엑스포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국화축제 현장을 둘러본 함평 군수가 발전 가능성으로 보면 나비축제 보다 고창국화축제가 더 전망이 밝다는 찬사를 보냈다.

고창군의 지리적 입지와 향토문화와 결합시켜 보는 국화축제의 가능성은 더욱 큰 비전을 담아낸다.

고창은 판소리 6마당의 고향이자 모양성과 선운사,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등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흔치 않은 지역이다.

여기에 석정온천과 동호해수욕장 등 자연적인 관광요소가 즐비한 가운데 호남 최대 도시인 광주 및 전주, 충청권인 대전 등과 1시간30분 이내에 위치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 있다.

<전향적인 복원 노력 나와야>

어찌 보면 석정온천 나대지를 무대로 한 고창국화축제는 지속성에 원천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축제무대가 사유지인데다 관광지구 및 인근 석정마을에 부지를 소유한 지주 수가 73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고창군이 1992년부터 터덕거리고 있는 석정온천지구 관광개발사업을 주요 현안사업으로 추진 중이어서 언제 나대지에 건물이 들어설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제약 속에 축제를 개발한 정원환 위원장은 지주조합과 ‘관광개발사업이 착공되면 축제를 그만 둔다’는 조건으로 부지를 제공받았다.

이는 지주들과 고창군 쪽에서 보면 나름대로 축제를 중단시켜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이 된다. 한편으로는 고창국화축제에 대한 군민들의 호응도 역시 절대적이다.

지난해 고창군이 석정지구 개발을 추진하면서 축제 개최가 불투명해지자 무려 6000여 명의 군민들이 축제개최를 요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했다.

여기에서 축제의 발전적인 계승을 위한 전향적인 모색의 필연성이 정당성을 얻게 된다.
정원환 위원장은 이와 관련 2~3개 후보지를 염두에 두고 석정지구 보다 광대한 면적에 국화를 재배해 발전적인 계승을 모색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특히 “고창은 문화의 장작더미이다. 불만 붙이면 저절로 타 오른다”며 “그 것을 점화시키는 기폭제가 바로 국화축제”라고 말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이를 위해 함평 나비축제처럼 영농조합법인을 조직하고 국화축제를 유료화 해 수입을 모두 농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사양화 된 농업의 대안을 마련하고 농가소득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행정 또한 전향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고창국화축제가 갖는 문화적 자산가치를 감안할 때 해당 지역인 고창군은 물론이고 전북도와 나아가 문화관광부까지 나서 축제의 복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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