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共感)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주장이나 의견에 대하여 자기도 꼭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주장과 생각, 의견과 논설에 대한 공감을 얻기를 바란다.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욕망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속에서 항상 있어야 할 공감은 사람됨의 소중한 윤리이며, 자신감이며, 긍정적 사고를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공감은 자신의 신뢰를 돈독히 하는 것이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공감이란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생각하는 태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감한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경험과 기술, 그 의견과 감정, 그 사상과 주장을 깊이 이해하며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감은 우리 안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공감의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려야 하고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공감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배웠으며 그 공감이 항상 자신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인다고 털어놓았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네 기분이 어떨 것 같으냐?” 라고 물으면서 공감의 의미를 깨우쳐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지금도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을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의 하나로 삼고 있으며, 지도자로서 직무를 수행 할 때도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피력하고 있다.
오바마는 공감이란 보수주의자이든 진보주의자이든, 권세있는 사람이든 권세가 없는 사람이든, 억압하는 사람이든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모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며 자기만의 안이한 마음과 생각과 고집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입법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이나, 입법을 막으려는 사람들이나, 상호간에 입장과 견해가 다른 점을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는 자세로서 서로 공감한다면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소중한 요소이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박사는 '유러피안 드림'(The European Dream)이란 책에서 공감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의사소통의 궁극적 표현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이란 더 넓고 포괄적인 영역으로 공감을 확대해가는 것으로써 처음에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공감이며, 그 다음은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공감이며, 그 다음은 사원에 대한 사장의 공감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인 요인이며 모든 과정과 단계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다. 공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의 경험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삶의 여정이란 주로 실패와 패배, 고통과 시련, 염려와 근심, 갈등과 긴장, 반목과 쟁투로 점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삶의 여정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의 곤경과 실패, 아픔과 역경, 갈등과 반목을 공감함으로 인해 그들을 위로하며 도와주며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적 접착제이며 세계화 속에서 지구생명공동체, 지구촌 사람, 한울타리 안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의식을 증진하는 새로운 행동규범이다. 공감이라는 보편적 기반 위에서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며,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이며, 소유적이 아니라 공유적이며, 분열이 아니라 일치를 이루는 역할을 한다.
Jeremy Rifkin은 또 이렇게 설파한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전체의 연약함과 취약성, 고통을 매일 매일 접할 수 있다. 그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곤경과 아픔, 슬픔과 염려를 마치 우리 자신의 아픔과 곤경으로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예를 들어 에이즈로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아프리카 부모의 TV인터뷰를 보면서 그 아픔을 공감한다. 그 일이 자기 가족의 일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감은 모든 개인과 그룹, 경제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상호 충돌할 때 상호 상생하는 조정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공감은 매우 소중한 가치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중한 역할을 감당하는 공감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름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자기가 타인에게 기대한 만큼 타인도 자기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각성시키는 말이며,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서로의 권리 주장만을 앞세우지 말고 겸손하게 먼저 이해와 사랑을 행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황금률은 희생적, 능동적, 적극적 사랑운동을 타인에게 기대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손을 내밀어 시작함으로써 모든 갈등과 반목, 시기와 쟁투, 분열과 불화의 사회적 악순환의 고리가 제거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우리들에게 내가 남에게 기대한 만큼 남도 나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남에 대한 자기 부인과 헌신의 마음으로 존중히 여길 때 공감은 아름답게 싹 터 오르는 것이다.
공감은 인생을 보람있고 행복하게 만드는 소중한 가치이다. 공감할 때 질서가 확립되고 명랑사회가 건설되며 미래 비전을 실현하는 힘을 받게 된다.
공감은 일치를 이루며, 화해를 가져온다./최원탁 (전주현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