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에 이어서>
금수회의 이틀째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기에 오랜만에 전주 구경이나 해볼까 마음 먹었다.
이른 아침에 나가 호텔 옥외 주차장에 임시로 마련되어 있는 동물들 숙소를 둘러보았다.
캡슐형 숙소는 꽤 그럴듯했다.
독수리 숙소에는 나무 홰를 걸쳐 놓았고, 펭귄과 북극곰 숙소에는 냉방기가 돌아가고, 코끼리, 고릴라, 원숭이 숙소에는 건초가 푹신하게 깔려 있었다. 어제 얼굴을 익혀서인지, 나를 본 동물들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동물들 숙소를 나와 남부시장에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고 전주천으로 내려갔다. 천변에는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어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천변 길을 따라 상류 쪽으로 가니 작은 누각 한벽당이 보였다.
한벽당은 조선 개국공신 월당(月塘) 최담(崔潭)이 지은 별장용 누각으로 이곳과 관련하여, 실학자이자 문신인 이서구(李書九, 1754~1825)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척재(惕齋) 이서구는 조선 후기 사가시인(四家詩人,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의 한 사람으로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인데, 두 차례에 걸쳐 전라도 관찰사로도 부임하였다.
이서구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길에 허름한 차림으로 한벽당 인근을 지나가니 그곳에서 쉬고 있던 한 무리의 선비들이 그가 누군지 모르고 농을 걸었다. 아마도 시 한 수 읊으면 술 한 잔 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이서구는 그 자리에서 시를 써주고 술을 청했다.
그때까지 잘난체하던 선비들이 시를 읽고 깜짝 놀라 미처 몰라뵈었음을 사죄했다고 하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아관세 시옷 我觀世ㅅ
화복유 리을 禍福有ㄹ
약불수 미음 若不修ㅁ
종당점 디귿 終當点ㄷ
여기서 ㅅ, ㄹ, ㅁ을 그 모양이 비슷한 사람 人(인), 자기 己(기), 입 口(구)로 바꾸어 해석하면, “내가 세상 사람을 보아하니/ 화와 복은 자신에게 있더라/ 만일 입을 바르게 닦지 못하면/ 결국에는 망하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의 시다. 디귿(ㄷ) 위에 점을 찍으면 망할 망(亡)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무렵 민중들은 한시(漢詩) 대신 한글로 운을 맞춰 쓰는 언문풍월 짓기를 즐겨 했는데, 이서구의 이 해학시(諧謔詩)는 한글 자음과 한자를 섞어서 지었다.
자신을 희롱하는 젊은이들에게 화를 내는 대신 시 한 수로 코를 납작하게 해준 것이다.
한벽당에 올라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다가 다시 천변으로 내려섰다.
냇가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군무를 추고 있었다. 라바댐 위로 느리게 흐르는 물결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건너편에 천연기념물 수달 두 마리가 물속을 헤엄치더니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
쪼그려 앉아 수달을 바라보다가 일어나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산을 바라보는데, 산 정상인 중바위(僧巖)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자세히 바라보니 어제 주제발표를 했던 검독수리였다.
독수리는 커다란 날개를 펴고 한옥마을을 빙 돌아 완산칠봉 방향으로 날아갔다. 발표를 끝낸 독수리가 여유롭게 시내 구경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징검다리를 건너 동학혁명군 김개남 장군이 처형되었던 초록바위를 지나니 다가산이 보였다. 다가산은 동학혁명군과 관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894년 2월에 봉기한 동학농민혁명은 4월 27일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관군과 동학농민군은 이후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전주성을 둘러싸고 거의 매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를 완산전투라고 한다.
동학혁명군은 다가산을 점령한 후 밀고 밀리는 전투를 계속하다가 홍계훈이 이끄는 관군과 사활을 건 대접전이 6월 6일 벌어졌다. 이때 관군의 집중 사격으로 동학혁명군은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관군도 전주성을 탈환까지는 하지 못한 상태에서 6월 11일 동학혁명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인 전주화약(全州和約)을 정부가 수용하는 조건으로 양측은 전투를 중지하고 동학혁명군은 일단 해산하였다.
그러나 조정의 개혁이 지지부진하자 동학군이 직접 집강소를 설치하며 폐정개혁에 나섰으나 청나라 군사가 들어오고 그 틈에 일본군이 궁궐을 침탈하면서 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세상을 바꿔보자고 나섰던 동학혁명군들의 결기를 마음에 느끼며 산길을 오르니 이 길을 설명하는 표지판이 보였다.
다가산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가 세워진 곳이어서 그곳에 오르는 길을 신사 참배하러 가는 길이라는 뜻인 ‘참궁로(參宮路)’라 불렀다고 한다.
그 길을 따라 오르는데 오른쪽으로 활터가 보였다. 화살이 과녁을 맞고 떨어지는 소리에 호기심이 생겨 내려가는 길에 그곳에 들렀다.
천양정(穿楊亭)이라는 국궁장으로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창건되어, 그 역사가 무려 313년이나 되는 활터라고 관계자가 설명하였다.
사대(射臺)에는 추운 날씨에도 몇몇 궁사가 활을 내고 있었다. 허리에 맨 궁대(弓帶)에 화살을 꽂고 나와 활을 쏘는데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145m 거리에 있는 과녁을 맞고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나도 이번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면 활쏘기를 배워볼까 생각하며 활터를 나왔다.
활터에서는 이름 대신 아호(雅號)로 부른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호를 뭐라고 할까?
하늘에는 조각구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인생은 작은 구름과 같다고 했으니, 아호를 소운(小雲)이라고 할까?’
아호가 너무 여성스럽지 않을까 생각하며 웃었다.
전주천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코트깃을 여미며 전주 구경을 마무리하였다. >>8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