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사회는 생존경쟁으로 인하여 분주한 사회입니다.
끊임없는 경쟁과 과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빠른 변화를 모색함으로 인하여 여유없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빠른 경제성장과 높은 생산성, 효율적인 시스템은 잘 구축되었지만 번 아웃 증후군, 만성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단절로 실질적인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한경쟁으로 내몰며 성과사회와 성취라는 이름으로 바쁘게 살아 번 아웃(Burn Out)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사회에 진정한 쉼이 필요합니다. 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삶의 본질을 찾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충실하게 되찾는 전환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쉼이란, 몸과 마음과 정신의 긴장을 내려놓고 새로운 에너지를 회복하며 자신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쉰다는 것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하게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으로서 속도조절을 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엔진이 좋아야 합니다. 수 백 마력의 고성능 엔진이 장착된 자동차일지라도 멈춤의 기능이 없다면 질주하다 충돌하여 부서질 것입니다. 그래서 멈춤의 기능인 브레이크가 있는 것입니다. 잠시 멈춤이 필요합니다.
창조주는 낮과 밤의 시간을 구별하여, ‘낮엔 일하고 밤엔 잠을 자야 한다’는 창조질서를 주었고, 창조질서가 없었다면 인간의 욕심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멈춤이 없이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멈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멈춤이 ‘쉼’입니다.
사람에게는 스스로 멈춤이라는 자정능력이 있습니다.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없다면 몸은 망가지고 마음은 피폐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쉼, 휴식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피로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적극적인 쉼을 찾아야 합니다.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쉼, 즉 휴식이 매우 필요합니다. 하던 일을 얼마동안 멈추고 쉬는 휴식(休息)과 직무를 일시적으로 멈추고 쉬면서 심신을 보양하는 휴양(休養)도 필요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군대, 회사, 사회단체 등에서 일정기간 쉬어주는 휴가(休暇)가 필요하고 경작하던 땅을 얼마동안 묵혀두는 휴경(休耕)도 필요합니다.
법원에서 재판하는 일도 잠시 동안 쉬는 휴정(休廷)이 필요하고, 병원에서 분주하게 환자를 진료하고 돌보는 일을 잠시 멈추는 휴진(休診)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직무를 하루 또는 잠시 쉬는 휴무(休務)가 필요하고, 전쟁 당사 국간의 합의로 전투행위를 잠시 멈추고 쉬는 휴전(休戰)이 필요하고, 신문이나 잡지 따위의 정기간행물의 간행을 잠시 쉬면서 재정비하는 휴간(休刊)이 필요합니다.
분주한 사회에서 열심히 앞만 보고 질주해온 삶으로 인한 피로를 풀면서 몸과 마음을 잠시 동안 편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에너지를 재충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쉼이란 무엇인가?
첫째: 진정한 쉼은 생산을 위한 에너지의 충전의 시간으로서 쉼은 에너지로 보충하며, 생산과 생명을 위한 충전으로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점검입니다.
사람에게서 에너지의 흐름은 존재를 이루고 존재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일하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모두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쉼이란 일을 잠시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가 생성되는 시간이며, 생성된 에너지가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 속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을 보충하는 충전을 이루는 것이 쉼입니다.
사람의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무한생산, 무한성장, 무한발전, 무한경쟁 체제하에서 쉰다는 것은 개발과 생산을 멈추게 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본을 증식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쉼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매우 인색한 체제 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인식하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행동이고, 일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생명에 반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므로 쉼에 대해 부정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하는 삶의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쉬는 것에 대한 이해가 매우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쉬는 것이 에너지 생산을 위한 필요한 요소가 되고, 생산성 향상에 자원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쉼에 대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됨으로 말미암아 쉼을 통한 에너지 보충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일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존재(Being) 자체가 ‘에너지 활동’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활동한다는 것과 일한다는 것은 에너지의 흐름이며 에너지의 흐름이 힘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활동이나 일을 위한 연료나 자원이나 동력이 에너지의 흐름으로 인한 것일 때 에너지의 흐름이 힘의 공급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존재는 에너지의 흐름을 받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일할 수 있는 동력이며 이런 에너지는 쉼을 통해 생성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위치에서 활동을 하든지, 아니면 멈추고 있든지 혹은 일하고 있든지 간에 에너지는 공기와 전기처럼 흐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 됨의 삶을 구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쉼이라는 것은 생산을 위한 에너지의 충전의 시간으로서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에너지(Energy)는 물리학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에너지는 일할 수 있는 능력, 힘, 활동을 위해 필요한 체력을 의미합니다.
1802년에 영국의 물리학자 토마스 영(Thomas Yong)이 자신의 자연철학에서 에너지를 “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너지는 일하게 하는 어떤 것,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 활동해야 하는 것, 힘 쓸 수 있게 하는 것, 작업하도록 하며 노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힘으로서 생산을 위한 동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직 그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하여 쉼이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쉼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매우 소중한 투자입니다.
둘째: 진정한 쉼은 생산을 위하여 필요하지만 결단코 생산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살아 온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충실하게 만들기 위하여 창조적으로 채워가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됨의 존재가치를 외부에서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데서 얻으려하지만, 그 보다도 자신의 내면세계를 충실하게 하며 자신의 현실을 수용하는 의연함으로 자신을 창조적으로 채워가는 것이 진정한 쉼입니다. 즉,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는 지혜와 마음의 다스림을 조절하는 시간이 쉼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세계의 공간을 넓혀간다는 것은 한 번의 실패와 실수로 인하여 자신의 삶과 자신의 존재 전체에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마음을 파수하는 것입니다. 쉼은 자신의 마음과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돌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돌봄은 현실과 담을 쌓는 도피가 아니라, 세상의 소용돌이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심력(心力)을 충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쉼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에 찬 소리가 있습니다.
요즈음 너무 지쳐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도 힘들고,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며 자연스럽게 하던 일을 태산처럼 무겁게 느껴진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있고, 주말 내내 잠을 잤는데도 월요일 출근 할 때에 몸이 무겁고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쉬어도 피곤할까?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몸은 멈추어 있지만 마음과 생각은 계속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일하지 않으면 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상태가 쉬는 것은 아닙니다. 누워 있는 것과 쉬는 것은 다르며, 일하지 않는 것과 쉬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휴식은 단순히 일하지 않거나 활동을 중단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내면의 상태, 마음의 쉼, 정신의 평안함을 이루어야 진정한 쉼이 이루어집니다. 몸은 멈추고 있고 일손은 멈추고 있지만 마음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생각이 무엇인가를 계속 추적해 나간다면,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다 더 아름답게 창조적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셋째: 진정한 쉼은 어떤 일과 사건으로 인하여 긴장했던 신경계가 안정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며, 몸이 다시 현실의 삶과 연결되는 힘을 얻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단순한 활동의 중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찾고 현실의 삶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재미있는 일이 생기거나, 목표를 달성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즐거운 영상을 볼 때 도파민(Dopamine)이 터지는 것입니다. 도파민이란 용어는, 과거에는 뇌과학 전문가나 의사들이 사용하던 의학용어였지만 이제는 일반인들도 쉽게 일상으로 사용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도파민은 뇌의 신경세포 간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신경전달 물질이자 호르몬입니다. 도파민은 단순히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쾌락의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학습하게 하는 신경전달 물질입니다.
또 도파민은 ‘계속 더 하라’는 명령어가 되고 ‘더 가져라, 더 성취하라, 더 힘써 일하라’ 등 우리를 이끄는 힘으로서 우리를 계속 뛰게 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를 멈추지 못하게 하며, 우리가 지쳐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과지상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승진하면 더 높은 자리가 보이고, 집을 마련하면 더 좋은 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목표를 성취하였을 때의 기쁨은 짧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끝없는 순환고리에서 빠져서 쉬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지쳐서 쓰러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가 충분하느냐?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계속 피곤에 쌓이는 것입니다. 몸은 잠시 멈추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계속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치고 마치 다 타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같은 소진상태를 흔히 번 아웃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번 아웃은 단순히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 에너지가 고갈되고, 일에 대한 거리감이 생기고, 직업적 사명감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잠자리에 누워서도 일을 생각하고, 내일 생길 문제를 미리 걱정하면서 잠자리에까지 일 생각에 사로잡혀 있게 되면 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 행동은 몸의 움직임은 멈춰있지만 뇌와 마음은 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행을 멈춘 자동차도 시동이 켜있으면 엔진은 계속 돌아가며 연료는 소모되는 것입니다. 외부활동을 멈추고 몸은 쉬고 있지만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염려하고 있다면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쉼은 신경계가 안정되고 몸과 마음이 정상적인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일상의 삶으로 연결되어 새 힘을 부여받는 것이 진정한 쉼입니다.
넷째: 진정한 쉼은 필요할 때 긴장하고 위험이 지나가면 긴장을 풀며 집중할 때 집중하고, 멈춰야할 때 멈출수 있는 것으로서 생명의 리듬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생명의 리듬을 만든다는 것은 삶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쉼을 통해 생명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쉼을 누리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으며 회복하고, 어떤 사람은 땅을 파고 또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며 쉼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흙을 만지면서 노동함을 통해 쉼을 찾아 생명의 회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회복은 생명의 리듬입니다. 생명의 리듬은 몸이, 몸 되게 하는 것이며 몸에 새로운 에너지를 충만하게 채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각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호흡과 수면과 활동과 일하는 것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쉼은 수동적으로 멈춰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능동적인 활동으로서 자신의 삶의 리듬을 회복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피곤하면 피곤함을 인정하고, 자극이 지나치면 줄이고, 몸이 굳어 있으면 움직이고,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쉼이란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할 일을 모두 끝내고 충분히 성취한 후에 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 일은 결코 모두 끝나지 않습니다.
진정한 쉼은 “이 만큼 했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는 보상이 아닙니다. 마땅히 쉬어야 할 권리가 있는 존재로서 조건에 상관없이 쉬어야 합니다.
내가 쉬는 동안에도 세상은 돌아가며, 내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사회는 움직이고, 내가 손을 놓을 때도 생명은 자라나고, 일상이 잠시 멈추는 동안에도 자연은 순환하는 것입니다.
쉼을 통해 경쟁에 얽매이지 않고 더 건강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몸을 멈추면서 마음을 멈추지 못하며, 일을 멈추고도 사고를 멈추지 못합니다. 몸은 의자에 쉬면서도 뇌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분주히 달리고 있다면 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차단작용이 필요합니다.
현실을 도피하여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분주함에 빼앗겼던 몸과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고,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사랑하며 몸의 균형을 삶과 연결하여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함으로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풍부하게 가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쉴 수 있는 자격을 얻어서 쉬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지 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쉼이 필요한 때입니다.
다섯째: 진정한 쉼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는 매우 지혜로운 역할을 하게 하는 보석입니다.
쉼은 육체의 보석입니다. 쉼은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쉼을 통해 마음과 정신이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분주한 시대의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미래 비전을 향하여 다시금 새 힘을 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를 위협하는 적대적 환경과 조건으로부터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어력을 준비하는 자세가 쉼을 통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현실의 불쾌한 일상으로 인하여 받은 감정의 상처를 치유하고 강한 면역력으로 인하여 감정을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쉼은 분주한 세상에서의 흐트러진 자신을 정돈시키고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에너지를 충분하게 충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격변하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자기주도적인 자세로서 현실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쉼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재충전의 생산적인 시간입니다. 현재적인 자신의 삶을 살펴서 미래의 이상을 실현하는 유용한 역할을 창조하는 것이 쉼입니다.
정당한 사람에게는 법이 필요 없고,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현자가 필요 없지만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쉼입니다.
진정한 쉼은 바쁜 와중에서도 잠시 동안 일손을 멈추고 쉼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멈춤의 시간을 통해 바쁜 일과에서 한 걸음 물러나 쉼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은 현실과 이상의 조화로운 에너지를 보충하는 매우 생산적인 것입니다. 예상 밖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므로 잠시 쉬어가는 것 또한 지혜로운 것입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라는 우리의 속담도 있듯이, 바쁘게 달려가다가 잠시 멈추는 쉼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의 평탄한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진정한 쉼이 필요한 때입니다.
쉼은 승리를 위한 새로운 준비의 시간입니다.
쉼을 통해 새 힘을 얻고, 생기를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진정한 쉼은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을 일탈하지 않도록 인도함을 받으며 좌우로부터 불어오는 유혹의 바람을 단호하게 차단하며 올곧게 나갈 수 있는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쉼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으며 메마른 땅에 단비 같고, 허약한 몸을 회복시키는 원기 같으며, 신선한 양식으로 생명의 활력을 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바쁜 일상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할 때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새 힘의 자양분을 공급받는 시간입니다.
진정한 쉼은 생명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며, 생산을 위한 새 힘이 흐르게 하는 것이며, 이상을 실현하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쉼은 에너지 생산을 위한 매우 필요한 시간입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며,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진정한 쉼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쉼을 누리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쉼은 참으로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