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에 들어서면 어느 순간 두 개의 봉우리가 불쑥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모습을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영락없이 말의 두 귀를 닮았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다.
그래서, 이름도 마이산(馬耳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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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안 마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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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현 (사)아리울역사문화 이사장 |
마이산은 진안군 진안읍과 마령면의 경계에 자리한다.
암마이봉은 687m, 숫마이봉은 681m이다. 높이만 놓고 보면, 전북의 다른 명산에 비해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평평한 진안고원 위로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어 실제보다 훨씬 웅장하게 다가온다.
마이산은 계절마다 이름도 달리 불렸다. 봄에는 안개 사이로 두 봉우리가 솟아오른 모습이 돛단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푸른 숲 위로 솟은 모습이 용의 뿔 같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봉’, 겨울에는 눈 쌓인 들판 위에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 산을 두고 이렇게 많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마이산을 오래 바라보았다는 뜻일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마이산의 바위를 바라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거대한 바위 속에 크고 작은 자갈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마이산은 7000만 여년 전 거대한 호수 바닥에 쌓인 자갈과 모래가 오랜 세월 굳어 만들어진 역암산이다. 땅이 솟아오르고 비와 바람이 끊임없이 산을 깎았다. 부드러운 부분은 사라지고 단단한 부분이 남으면서 오늘날의 독특한 두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손바닥만 한 돌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자갈이 모여 거대한 산을 이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이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지구가 써 내려간 한 권의 두꺼운 역사책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기록하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는 시간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산을 ‘호남의 지붕’이라 부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호남정맥이 마이산을 지나고, 산줄기는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뉜다. 물길 또한 갈라진다. 한쪽 물은 금강을 따라 서해로 흐르고 다른 한쪽 물은 섬진강을 따라 남해로 향한다.
산은 같은 자리에서 솟았지만, 물은 서로 다른 바다를 찾아간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마이산을 산태극(山太極)·수태극(水太極)의 중심으로 바라보았다. 산줄기와 물줄기가 태극처럼 휘돌아 나가는 호남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마이산이 안정되면 호남이 평안하다’는 말이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마이산을 옛 사람들은 지질학이 아닌 이야기로 설명했다.
아주 먼 옛날, 두 산은 부부 산신(山神)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하늘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새벽에 물을 길으러 나온 아낙네가 움직이는 산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람에게 들켜 버린 산은 더 이상 하늘로 올라갈 수 없었다. 화가 난 숫마이봉은 아이를 데리고 돌아섰고, 암마이봉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지금도 숫마이봉은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서 있고 암마이봉은 조금 고개를 숙인 듯 보인다는 이야기다.
과학으로 보면 수천만 년의 지질운동이 만든 산이지만, 전설 속에서 바라보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 가족의 이야기가 된다. 옛사람들은 그렇게 산에 마음을 주고 이야기를 입혔다.
마이산 깊숙이 들어가면 또 다른 놀라운 풍경을 만난다. 탑사다.
거대한 암벽 아래 크고 작은 돌탑들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천지탑과 오방탑을 비롯한 수많은 돌탑은 시멘트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석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들었다. 돌 위에 돌을 올린 단순한 구조인데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이 돌탑들은 이갑룡 처사가 평생에 걸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최근에는 일부 돌탑이 그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누가 처음 돌을 놓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 왜 이곳에 돌을 쌓았을까 하는 질문이다.
아마 돌 하나를 올릴 때마다 마음속 소망 하나도 함께 올렸을 것이다. 가족의 건강을 빌고, 자식의 앞날을 빌고, 고단한 삶이 조금은 나아지기를 빌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면 탑사의 돌탑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돌이 되어 쌓인 것이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도 모였다. 마이산에는 소망만 쌓인 것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결의도 이 산에 남아 있다.
1907년 정재 이석용은 마이산에서 하늘에 고하는 제사를 올리고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을 결성했다. 일제의 침탈이 거세지던 시기였다. 그들은 편안한 삶보다 나라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마이산에서 결의를 다진 의병들은 진안을 비롯한 전북 곳곳에서 항일투쟁을 이어 갔다.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 걷는 길을 100여 년 전 누군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걸었던 것이다.
마이산에는 금당사와 은수사, 탑사 등 오랜 사찰도 자리하고 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과 목조불좌상 등 귀중한 불교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은수사 주변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심었다는 청실배나무와 금척을 받았다는 태극전이 있다. 또한 산을 타고 오르는 줄사철나무 군락이 마이산의 또 다른 시간을 보여 준다.
7000만 년이라는 시간을 견딘 산 앞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참으로 짧다. 그러나 마이산을 오늘의 명승으로 만든 것은 자연의 시간만은 아니다.
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만들었던 사람들, 돌 하나를 올리며 소망을 빌었던 사람들, 나라를 지키겠다며 의병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 산 아래 절을 짓고 마음을 닦았던 사람들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 위에 켜켜이 쌓여 있다.
어쩌면 마이산의 모습은 탑사의 돌탑과 닮았다.
작은 돌 하나하나가 모여 탑이 되듯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 오늘의 마이산을 만들었다.
그래서 마이산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산을 보는 일이 아니다.
7000만 년 전의 자연이 남긴 흔적을 만나고, 그 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