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내려놓기> 휴브리스Hubris와 네메시스Nemesis 교훈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6.08.12 10:11 수정 2026.08.14 07:18

▮ 필자 최원탁
-전북기독교문화유산보존회장
-전주현암교회 원로목사

휴브리스(Hubris)는 오만, 거만, 자만, 교만을, 네메시스(Nemesis)는 응징, 복수, 업보, 정당한 벌을 내리는 인과응보를 뜻하는 그리스의 두 여신입니다.

휴브리스는 지나친 자신감이나 오만함으로 인해 자신의 한계를 망각하고 도를 넘는 행동으로서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대평가하여 만기친람(萬機親覽)의 독단적인 행동을 하는 교만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네메시스는 복수와 응징의 여신으로서 자신됨의 분수를 모르고 지나치게 오만방자할 때에 신의 입장에서 바로잡아 주는 ‘정당한 벌’, ‘피할 수 없는 벌’을 가져오는 여신을 말합니다. 세상의 적절한 균형과 질서, 공정과 평등을 맞추기 위해서 네메시스가 찾아와서 오만하고 교만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휴브리스는 오만과 교만함을, 네메시스는 오만하고 교만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의 두 여신입니다.

정치권력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두 여인 휴브리스와 네메시스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차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벌이는 싸움을 통해 출발하는 매우 신비로운 것입니다.

◇ 욕망 휴브리스-복수 네메시스 두 女神의 교훈

오만의 여신 휴브리스는 인간에게 욕망과 탐욕의 불을 지피고, 자아(ego)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감추고 용기 있게 나아가서 정상을 정복하여 욕망의 뜻을 이루라고 충동질하는 것입니다.
휴브리스의 충동질을 받은 자아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원하고, 더 높은 지위와 재물, 더 큰 성공,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돈, 더 힘 있는 권력, 더 많은 인정을 받으며 더욱 자신감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권력의 힘을 지탱하는 강력한 휴브리스는 개인과 단체, 정당과 기관, 사회와 국가의 혁신을 추구하면서 성장과 부와 힘을 창출하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휴브리스는 지나친 자신감과 자만함, 오만함과 거만함, 탐욕적 욕망을 가지고 자신의 한계와 도를 망각하고 혼용무도(昏庸無道)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휴브리스는 자신의 능력과 권력을 과대평가하면서 자만에 도취하여 다른 사람의 충고와 권면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권력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휴브리스의 오만함과 교만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므로, 응징의 여신 네메시스가 찾아와서 천벌을 내려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네메시스는 이런 오만방자한 행동으로 일관하는 휴브리스를 추앙하는 자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정당한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네메시스는 복수와 응징의 여신으로서 피할 수 없는 벌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분수를 모르고 너무 지나치게 자만, 거만, 오만해 질 때에 여신의 입장에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정당한 벌을 가져와서 합당하게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라는 뜻을 따라 인간이 권력을 가지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거나, 탐욕에 치우치거나, 오만을 부리거나, 거만을 부리면서 신의 영역을 넘보는 교만을 부리면 네메시스가 찾아와서 벌을 내린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므로 휴브리스와 네메시스는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상호적 관계를 함축하고 있는 개념의 단어입니다. 즉,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인간이 그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오만하게 행하면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권력자들에게 여전히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간절한 희망 사항이기도 합니다.

◇ 겸손함에서 정의로운 권력의 힘이 나온다

휴브리스와 네메시스는 단순한 그리스 신화 속의 이야기를 넘어 오늘의 우리들에게와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과 경제적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과 각종 기득권 세력자들이 자기들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교만을 부릴 때에는 매우 유용한 교훈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나친 오만과 거만은 결국 자기 스스로에게 재앙을 부르고 그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어떤 형태로든지 되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재앙이며, 응징이라는 말입니다.
역사는 자신의 오만으로 인하여 파멸하는 지도자로 가득합니다(History is full of leaders who were destroyed their own hubris).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박사는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그 성공에 심취하여 오만해지고, 권력을 획득한 정치인들이 그 권력에 취해서 다른 사람의 충고와 권면을 듣지 않아 판단력을 잃고, 교만하고 오만해져서 몰락하는 현상을 휴브리스의 덫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기업, 노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력을 얻게 되고, 재력과 명성을 얻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거만하고, 오만해져서 응징하는 네메시스의 여신을 스스로 부른다”라고 했습니다.
휴브리스는 용기를 주고, 네메시스는 두려움을 주고, 휴브리스는 욕망을 주고 목적을 성취하여 성공에 이르도록 채근하고, 네메시스는 심판하고 응징하는 염려와 벌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휴브리스와 네메시스, 즉 오만과 처벌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인간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정치발전과 경제번영과 사회질서가 바로 설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거나 지배당하게 되면 재앙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정치의 정의로운 힘은 권력을 가진 자와 균형 잡힌 인격과 행동이며 겸손하게 섬기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휴브리스의 오만함과 네메시스의 응징하는 천벌을 생각하고 권력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는 균형 잡힌 행동과 양심을 통해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를 넘어 자신의 한계를 망각하고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태도를 나타낼 때 네메시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와 질서, 윤리와 한계가 있었으며 이를 어겼을 때는 네메시스가 찾아오지 않을까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와 의무, 질서와 책임을 무시하고 주어진 권력을 가지고 오만을 부리거나, 차별하거나, 편파적으로 행사하거나,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거나, 자기 편 사람들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거만을 부리면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와서 합당하고 정당한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네메시스는 교만하고 거만한 권력자에게 벌을 내리고 균형을 상실하고 편파적으로 사용하는 데 도를 넘는 권력자들에게 파멸의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복수의 개념이 아니라 정당한 벌이라는 의미로서 오만한 행동과 교만한 처신과 일구이언(一口二言)하여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처벌을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 오만한 권력에는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와

휴브리스와 네메시스는 상호 적절한 상관관계로서 작동하는 데 매우 필요한 역할을 하는 여신입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는 것으로서 공적 사명이므로 오직 국가와 국민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선출된 권력이든, 임명된 권력이든, 큰 권력이든, 작은 권력이든지간에 겸손하게 국민을 위하여 사심 없이 봉사해야 합니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서 더 위에 있고, 임명된 권력이라고 해서 아래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권력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무(직책)에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권력으로 오만해지는 휴브리스가 된다면 응징하는 네메시스를 부르는 것입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이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고, 법과 동일시하여 법 위에 군림하고 국민위에 좌정하면서 법적 절차와 견제를 무시하면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옵니다.
또한 기업가가 노동자의 기여와 소비자의 권리와 지역사회에 대해서 오만하거나 거만을 부리면 휴브리스의 덫에 걸리게 되고 반드시 응징하는 여신 네메시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치권력이든, 기업의 재력이든, 예술의 힘이든, 자기 몫을 넘어서 타인의 몫까지 침범하고 위임된 권한과 허용된 자유와 권리를 무제한 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자기 맘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할 때에 응징하는 벌의 여신 네메시스가 반드시 찾아오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는다’라는 인과응보(因果應報)에 대한 진리를 망각하는 오만한 권력자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자기 뜻대로, 자기생각대로, 자기 멋대로 권력을 행사하고 기존의 법 질서와 체계를 흔드는 것입니다.
법의 기본질서와 보편적 가치를 초월하여 전통과 역사 속에서 내려온 법 정신을 뛰어 넘어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오만을 부릴 때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휴브리스는 인간의 오만과 권력자의 거만함이 신의 영역을 넘보거나 주제 넘게 교만해지거나, 오만방자한 자세로 국민을 무시할 때 네메시스는 이런 악행을 일삼는 권력자에게 신(God)이 내리는 필연적인 응징의 벌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만을 부리는 휴브리스가 파멸을 가져오는 네메시스를 부른다는 매우 뼈아픈 교훈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특히 정치 권력자가 오만하거나 거만하면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반드시 네메시스가 와서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 볼 때 자신의 오만과 거만으로 파멸된 지도자가 많습니다.

· 고대 바벨론 나라의 막강한 정치권력자로서 교만하고 거만한 느브갓네살 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바벨론이 근동에 최강국으로 부강하게 성장한 것이 순전히 자신의 능력과 통치력과 권세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오만에 취했습니다.
이런 오만과 거만한 느브갓네살 왕에게 여호와가 찾아왔습니다. 여호와는 교만하고 오만한 느브갓네살 왕에게 형벌을 내렸습니다. 왕좌에서 쫓아냈으며 들짐승처럼 살게 했으며 소처럼 풀을 먹게 했습니다. 몸은 이슬에 젖고, 머리털과 손톱은 독수리 같게하는 벌을 내렸습니다.

· 이카루스(Icarus)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게 되자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교만하게 태양 가까이 날아올랐습니다.
이카루스는 결국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카루스에게 네메시스가 찾아 온 것입니다. 이카루스는 교만했고 우쭐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 아라크네(Arachne)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라크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매우 뛰어난 직조명인입니다. 배를 잘 짜기로 소문난 여인이었습니다.
직조명인 아라크네는 자신의 베 짜는 실력이 여신 아테나(Athena)의 길쌈 실력보다 더 뛰어난다고 뽐내며 자랑하면서 교만을 부리고 여신에게 도전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거미가 되게 했습니다. 아라크네의 오만함이 거미가 되는 형벌을 받은 것인 데 네메시스가 임한 것입니다.

· 니오베(Niobe)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니오베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왕비로서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니오베는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며 교태를 부리면서 모성의 여신 레토(Leto)보다도 더 자식을 많이 낳고, 레토 여신 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신을 모욕하고 비난하는 오만과 거만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레토의 자식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왕비 니오베의 자식들을 모두 활로 쏘아 죽이는 잔인한 벌을 내렸습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니오베에게 네메시스가 찾아와서 벌을 내린 것입니다.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과 니오베, 아라크네, 이카루스는 분수를 모르고 오만하게 날뛰다가 네메시스의 벌을 받은 것입니다.

휴브리스와 네메시스는 인간에게 용기와 두려움, 욕망과 징벌,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과도한 힘과 권력으로 오만하거나 거만하게 되면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오고, 성공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지만 그 성공에 도취하면 실패의 네메시스가 찾아옵니다.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야망이지만 그 권력에 취하여 도를 넘는 오만과 교만으로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외면하면 응징의 네메시스가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의 자리를 위임 받은 공직자는 오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또한 사람은 반드시 죽는 것처럼 권력이 영원하지 않으니 결코 교만하지 말라는 의미의 메멘토모리(Mementomori)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 호리라도 권력이 던져 준 헤게모니에 취한 어용지식인들이 자신의 본분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교만하고 거만의 행세를 부린다면 반드시 네메시스가 올 것입니다.
· 약한 자를 보고 측은함이 없고, 잘못된 것을 보고도 외치지 않으며, 부정한 것을 보고도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판별하는 기준이 상실 된 존재로 살아가면서 오직 권력을 쫓으며, 헤게모니를 추구하며, 정치적 야망을 따라서 철새처럼 헤매는 불량한 정치인들에게 네메시스가 찾아 올 것입니다.
· 지금 우리는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고유가의 4중고 현상뿐만 아니라 대미 관세와 수도권 부동산의 아파트 값의 고공행진에 경제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할 여야 정치인들이 당권쟁취에 혈안이 되어 있으니 스스로가 응징의 여신 네메시스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은 갈등과 대립으로 양극화가 매우 심해져 있습니다.
이제 화합이니, 일치니, 연대니, 상생이니, 통합이니, 협치라는 어휘가 그 빛을 잃었습니다. 정치권은 서로를 악마 화 하고 멸절해야 할 대상으로 극한증오와 대결로 규탄하는 상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토론이나, 자기 성찰에 인색하고 적대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치인들이 교만하고 오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리에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 특히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쟁취와 자리다툼을 위해 여와 야, 보수와 진보, 당선자와 낙선자의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오만방자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으니 여기에 네메시스가 찾아오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입니다.
· 검찰청이 10월에 폐지되면 수사권은 경찰이 독점하게 됩니다.
경찰의 수사를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보완수사권을 검찰에게 주어서 경찰수사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야당과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것을 당론으로 확정한 여당과의 오만한 싸움터에 반드시 네메시스가 찾아올 것 같습니다.
·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오만방자한 선거관리 업무가 하나하나 밝혀지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럽고 통탄스럽기까지 하며, 지금까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참정권을 박탈시키고 투표통계 조작과 전산조작까지 하고 임의로 조정해 숫자 맞추기까지 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는 오만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러한 선관위에 천벌의 여신 네메시스가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휴브리스(Hubris)와 네메시스(Nemesis)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네메시스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오만을 부리고 거만하게 행동하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과 양심의 자세로 휴브리스의 유혹을 통제해야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글이 시대를 초월하는 효력을 갖는 이유는 진정한 인간의 본성, 즉 인격과 양심의 깊이를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 국왕 맥베스의 일생을 모티브로 작성한 희곡 ‘맥베스(Macbeth)’는 야망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했습니다. “너무 높이 뛰어 올라 반대쪽으로 내려앉은 분에 넘치는 야망만 있었을 뿐이였다”고 맥베스는 인격과 양심이 마비되었음을 토로했습니다.
제아무리 휴브리스의 오만함에 휘둘릴지라도 인간의 본성적인 인격과 양심만은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네메시스의 쓴 맛을 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하게 됩니다.
네메시스에서 얻은 교훈이 휴브리스에서 얻은 교훈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에서 얻은 가르침이 성공에서 얻은 가르침보다 더 유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휴브리스를 잘 다스리고 네메시스가 우리의 삶에 찾아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휴브리스는 오만, 자만, 거만, 교만을 네메시스는 응징, 복수, 업보, 정당한 벌, 천벌을 가져오는 여신입니다.

결론입니다.
기회도, 위험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우리 책임입니다.
휴브리스도, 네메시스도 모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휴브리스와 네메시스가 찾아오는 것 또한 우리의 삶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미래라는 중요한 변수를 넓은 시각에서 이해하고 책임적인 자세로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휴브리스와 네메시스는 뒤를 돌아 볼 때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네메시스가 보내는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휴브리스의 오만함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희망을 기대하며 현실의 고통을 인내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였는데 실패한 것과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실패한 것과는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 휴브리스와 네메시스를 지혜롭게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유일한 상수는 변화입니다.
변화는 삶의 균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화를 예측하는 수단이 없다면 더 크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휴브리스의 오만함의 위험을 막고 네메시스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휴브리스를 다스리지 못하면 네메시스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미래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시대에 미래의 희망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휴브리스를 잘 통제하는 지혜로서 네메시스의 위험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결국 오만함이 그를 파멸시켰으며, 그는 오만함 때문에 벌을 받았다.”
휴브리스와 네메시스의 일침입니다.


저작권자 시사전북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