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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바다와 시간이 빚어낸 풍경을 걷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6.08.10 09:59 수정 2026.08.10 10:01

전북의 명승지를 찾아서 2> 부안 변산반도와 채석강
▮필자: 문정현

수천만 년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 놓고도 그 곁에 오래 머물고 귀 기울이는 사람에게만 조금씩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는 곳, 부안 변산반도가 바로 그런 곳이다.
 
변산의 바다는 ‘아름답다’라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에는 쉽지 않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썰물로 나지막히 드러난 바윗돌을 걷다가 문득 스치는 바람 소리는 먼 옛날 사람들의 기도 소리와도 같다.
↑↑ 부안 채석강 해안

채석강에 서면 누구나 한동안 말을 잃게 된다.
‘돌을 캐는 채석장 같은 모습이 1.5㎞ 이어져 강과 같다’ 하여 채석강이다. 중국에도 이와 같은 모습을 한 곳을 채석강이라 하는데,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채석강 옆 강물 속의 달을 따려다가 빠져 죽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외변산의 채석강은 강이 아닌 바다와 접해 있어 수천 년 동안 파도가 만든 해식동굴이 많고 아름답다. 채석강 해식동굴 안에서 석양의 바다 낙조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은 최고의 걸작이다. 해식동굴 입구는 연인과 사랑을 약속하며 포옹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명소이다.
 
채석강의 산은 서해 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인생사진 한 장을 만들어낼 명소다. 산 정상의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들고 위도와 춤추는 석양의 낙조와 대화를 하노라면, 지구별 여행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채석강 정상에서 낙조를 보고 산길을 돌아 내려오면 좌측에는 해수욕장 우측에는 격포항의 횟집들이 즐비하게 있다. 1.5㎞의 채석강 바닷길을 썰물 때 한 바퀴 돌며 걸으면 손에는 조개, 가슴에는 바닷바람, 얼굴에는 햇볕이 물이 든다.

변산의 바다는 아름다움만 품고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 바다를 두려워 했고, 또 사랑했다. 거센 풍랑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던 어부들은 바다를 생명의 터전이면서도 신의 영역이라 여겼다. 그래서 절벽 위 수성당에서는 바다의 신에게 풍어와 무사 항해를 빌었다. 바람이 거세질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보다 더 큰 존재를 의지했고, 그 믿음은 세월을 건너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수성당 아래 죽막동 제사(祭事) 유적은 더욱 특별하다.
삼국시대 사람들도 이곳에서 바다를 향해 제사를 올렸다. 중국으로 향하는 배도, 왜국으로 향하는 배도 이곳을 지나야 했다. 위험한 바닷길 앞에서 사람들은 먼저 하늘과 바다에 평안을 구했다. 1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서면,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겸손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변산의 명승은 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변산으로 들어서면 풍경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곡은 수정처럼 맑은 물을 품고 흐르고, 마침내 직소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흰 비단을 풀어 놓은 듯 부드럽고도 힘차다. 바위에 부딪혀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햇살을 만나 무지개가 되고, 폭포 아래 깊은 용추는 하늘빛을 품은 채 말없이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예부터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폭포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내는 장소였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았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직소폭포 물소리 속에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하다.

변산을 걷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풍경에는 사람이 있다’라는 점이다.
채석강에는 시간을 읽던 사람들이 있었고, 수성당에는 바다를 두려워하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부들이 있었다. 직소폭포에는 하늘에 비를 빌던 사람들이 있었고, 죽막동에는 먼바다를 향해 떠나기 전 무사귀환을 기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명승은 아름다운 경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과 삶이 함께 남아 있을 때 비로소 명승이 된다.

오늘날 변산반도는 많은 여행자가 찾는 관광지이지만, 천천히 걸음을 늦추면 그 풍경 너머의 시간이 보인다. 수천만 년의 자연과 천수백 년의 역사,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이 한곳에서 만난다.
그래서 부안의 명승은 눈으로만 보는 풍경이 아니다.
자연이 써 내려간 역사책이며, 사람이 이어 온 삶의 기록이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켜야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필자: 문정현 이사장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문화와 역사를 발굴, 널리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사단법인아리울역사문화 이사장, 군산창의역사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현재 군산문화원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마을이야기’ 강사로 후진 양성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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