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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萬事斷想/ 새만금은 현대판 ‘녹색 청해진’이다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6.06.07 10:50 수정 2026.06.07 10:50

▰ 필자: 강동희 군산대학교 명예교수

◇ 새만금의 경제사적 의의

역사가 승자 중심의 기록이라면, 경제사는 자원 중심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흔히 백제, 장보고 시절의 신라, 그리고 고려를 찬란한 해양 강국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냉정한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당시 동북아 경제의 중심이었던 내륙의 실크로드 패권 경쟁에서 소외된 변방 세력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육로 대신 과감하게 바닷길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른바 ‘해상 우회 전략(Maritime Bypass Strategy)’입니다.
그 전략의 중심에는 기벌포(금강 하구)와 고군산군도, 그리고 오늘날의 새만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 변방에서 탄생한 혁신: 해양 실크로드

삼국시대 이후 고려까지 전라북도의 서해안 지역은 기존 패권 질서에서 밀려난 주변부 세력들이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기회를 엿보며 도전하던 역동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이후 한강 유역을 상실하면서 내륙 교역로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제는 쉽사리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송서(宋書)》에 따르면 백제는 중국 남조와 활발한 외교·교역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왜(倭)와도 해상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교가 아니라, 대륙 패권을 우회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금강 하구의 기벌포와 고군산군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장강 하류를 잇는 중요한 중간 기항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라 말기의 장보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완도 청해진을 중심으로 당·신라·일본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민간 해상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현대식 표현으로 하면, 장보고는 동북아 최초의 ‘해상 공급망 관리자’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고려 또한 벽란도를 통해 아라비아 상인들과 연결되었습니다. 《고려사》에는 벽란도에 아라비아 상인들이 드나들며 유리·향료·직물을 거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서긍(徐兢)의 《고려도경》에도 고려의 여러 항구와 국제 교역의 번영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안 유천리의 상감청자가 당대 최고의 인기 수출품이자 명품으로 대접받았던 이유는 최고의 상감 기법과 귀족적 미감뿐 아니라, 해상 운송에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고려의 해양 네트워크는 단순한 물류 체계가 아니라 기술·문화·상품을 연결하는 글로벌 공급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명의 혁신은 안정된 중심국에서가 아니라, 생존을 고민하던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역사적 명제를 새만금의 역사가 실증하고 있습니다.

2. 조선의 치명적 실책: 바닷길을 닫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어서 이러한 해양 우회 전략은 급격히 약화됩니다. 즉, 조선은 개국 초기부터 왜구의 침략으로 심각한 안보 불안에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대명(對明) 질서에 지나치게 순응한 나머지 해양 진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또한 성리학적 농본주의를 국가 운영의 중심 이념으로 삼으면서 상공업과 해양 경제를 체계적으로 육성하지 못했습니다. 강한 해상 통제 정책 속에서 민간 해양 활동은 위축되었고, 대외 무역 역시 국가가 독점하는 조공 위주로 축소되었습니다.
조선 사회의 역동성은 갈수록 약화되었고, 새로운 시장 개척보다는 제한된 토지와 권력을 내부적으로 재분배하는 폐쇄적 체제가 강화되었습니다.
만일 조선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축적된 해양 역량과 개방적 교역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더라면, 상공업의 발달과 해양 네트워크 확대를 바탕으로 보다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임진왜란과 같은 외침에 대한 대응 능력은 훨씬 강화되었을 것이며, 훗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36년 동안의 식민 지배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역사적 소신입니다.
그러나 경제의 개방성과 외연 확장이 멈추자, 정치 역시 점차 ‘제로섬 게임’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왕권과 신권의 갈등은 협력적 국가 운영보다는 상대를 제거해야 생존할 수 있는 권력투쟁으로 흐르게 되었고, 사색당파 또한 국가 발전 전략을 둘러싼 생산적 경쟁보다는 내부 소모전에 빠져드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18세기 산업혁명과 19세기 제국주의라는 세계사적 격변 속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채, 외세의 침략에 취약한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개방적 교역망과 해양 네트워크를 스스로 축소한 폐쇄적 국가 운영전략이 장기적으로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3. 현대판 에너지 실크로드와 새만금의 부활

오늘날 세계 경제는 또 다른 거대한 패권 구조의 격랑 앞에 서 있습니다.
바로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공급망을 뒤흔드는 탄소국경세와 RE100이 새로운 형태의 무역 장벽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내륙 실크로드에 대한 접근 장벽이 오늘날에는 ‘탄소 장벽’으로 바뀐 셈입니다.
유럽연합은 철강·시멘트 등 탄소집약 산업에 새로운 비용을 부과하기 시작하였고, 글로벌 기업들은 RE100 참여 여부를 공급망 참여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새만금은 다시 한번 현대적 의미의 우회 전략을 소환해야 합니다. 기존 화석 연료 패권에 종속되는 대신,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한 재생에너지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에너지 공급 루트를 열어가는 것입니다.
새만금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는 단순한 발전 시설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 산업이 글로벌 탄소 규제를 우회하여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녹색 에너지 우회로’이며, 현대판 ‘에너지 환적항’입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9조 원 투자 결정은 글로벌 탄소 장벽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대한민국형 RE100 산업생태계 구축 프로젝트로 평가되며, 향후 로봇 제조부터 AI 데이터센터, 그린수소 첨단산업의 집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4. 결언: ‘탄소로부터의 자유’를 향하여

과거의 해양 우회 전략이 물류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도전이었다면, 오늘날 새만금의 에너지 우회 전략은 ‘탄소로부터의 자유’를 선점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만금은 이제 기존의 글로벌 에너지 패권 질서를 우회하여 새로운 산업 생태계와 공급망을 창조하는 21세기의 ‘녹색 청해진’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바닷길을 닫아서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우리는 이제 새만금이라는 새로운 바닷길을 열어야 합니다.
새만금의 햇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재생에너지가 미래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어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갈 때, 전북은 역사의 변방을 넘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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