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시사전북 시사전북 2021년 12월호(통권224호)

Woman column / 앙겔라 메르켈의 리더십

홈페이지관리자 기자 입력 2021.12.10 14:46 수정 2021.12.10 14:46

고정 필자, 전우연 / 칼럼니스트


고정 필자, 사진 있음) 전우연 / 칼럼니스트
소년문학 편집장
전북관광지 스토리210선 집필
칼럼집 <립스틱 짙게 바르고>
소설 <파선> 해운문학상 본상 수상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인 1954년에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장벽으로 인한 동독과 서독의 냉전 시대, 그리고 다시 동서분단의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독일이 세워지는 혼란스런 와중에 태어나고 자라고 활동했다.

베를린 장벽은 1949년에서 1961년 기간에 250만 명에 달하는 동독의 전문직업인·지식인, 그리고 기술자들이 서독행을 택함으로써 동독의 경제력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 결과 동독 인민회의가 1961년 8월 12일 밤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모든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설치한 장벽이다.

철조망과 블록으로 이루어진 장벽은 기관총 초소와 지뢰지역이 설치된 5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대체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고압선과 방어진지들이 45㎞에 걸쳐 구축되어 베를린 시를 양분하고 서베를린 주위로도 120㎞의 장벽이 세워졌다.

장벽은 오랜 기간 동안 동·서 냉전의 상징물인 것처럼 인식되어왔다. 약 5,000명의 동독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장벽을 가로지르는 데 성공했으나 다른 5,000여 명은 공산당국에 체포되었고, 191명의 동독인들이 장벽을 넘다가 발각되어 사살되었다. 1989년 10월 동유럽의 민주화로 동독의 강경보수 지도부가 해체되면서 11월 9일 서독과의 국경선이 개방되었고 장벽의 굳게 잠겨 있던 문도 활짝 열려 자유로운 상호방문이 가능해졌다.
장벽이 설치된 지 28년 만인 1989년에야 독일을 동·서로 분단되었던 정치장벽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독일 1950년대는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구름처럼 서쪽으로 이동하는 시기였다. 이떼 정반대인 동쪽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이 있었다. ​서독 출신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의 가족이었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에서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당시 그에게는 함브르크에서 낳은 지 겨우 6주가 된 신생아가 있었다.

이 신생아를 데리고 머나먼 동쪽, 딱히 정한 거처가 있는 것도 아닌 곳을 향해 간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도 없는 공산치하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동독에 속한 브란덴부르크주 지방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카스너 목사는 청지기 인생을 사는 것과 예수님처럼 더 낮은 곳을 향해 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고 여겼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공산치하 동독으로 갔던 딸(메르켈)은 아버지의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생활로 양육받으며 자랐다.

메르켈의 태어날 때 이름은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였다. 아버지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해, 함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분이다. 라틴어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는 헤어린트 카스너이며 사민당 당원이었다.

메르켈은 부모님과 함께 동독으로 이주해.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던 동독에 속한 브란덴부르크주 지방의 개신교회 목사관에서 살았다. 독일의 재통일 이전에는 공산국가였던 동독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아버지가 목회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메르켈은 1957년에 태어난 동생 마쿠스와 이레네와 브란덴부르크 지방의 작은 도시인 템플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71년 기술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1970년대 초반에 자유독일청년회(FDJ)에 가입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수학과 어학 과목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러시아어 경시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여 디플롬학위(석사학위에 해당)를 받는다. 1978년 동독 국가보안부에서 일자리를 제안 받지만 거절한다. 슈타지는 그녀의 동독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정부통제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의사에 따라 운영되는 자유노조를 주장한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에 대한 메르켈의 동조적 성향을 기록하고 있다.

1986년 루츠 췰리케 교수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은 간단한 탄화수소의 반응속도 상수 계산에 대한 내용이며, 제목은 〈양자화학적, 통계적 방법에 기반한 단순결합 붕괴와 그 반응상수 계산 메커니즘에 대한 조사〉이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양자화학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동안 그녀는 자유독일청년회 과학 아카데미에서 지구선도위원, 선전부 의장을 지낸다. 그러나 동독의 정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메르켈은 1989년 독일 통일 이전까지는 옛 동독 소속의 그룹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1989년의 격동 중 결성된 민주개혁(Demokratischer Aufbruch, DA)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1990년 민주 선거로 성립된 동독의 로타어 드 메지에르(Lothar de Maizière) 정권에서 정부 대변인을 맡았으며 1990년 8월 DA와 기민당(CDU)의 합당으로 기민당원이 되었다. 12월에 하원 의원 후보로 뽑힌 그녀는 1991년 1월 헬무트 콜 내각에서 여성 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1993년 6월부터 2000년까지는 기민당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94년 11월 17일 클라우스 툅퍼의 후임으로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메르켈을 요약하면, 어릴 때부터 수학과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그녀는 동독에서 청년시절에 물리학자로 활동했고 과학아카데미에서 양자물리학을 연구했다.
1989년부터 동독 민주화운동에 개입하기 시작하여 독일 통일 직전인 1990년에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 당원이 되었다. 그해 말 하원 의원으로 선출됨으로써 정치적 수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헬무트 콜 총리 아래 여성·청소년부장관(1991~94)을 역임했고 1994년, 37살 나이에 환경부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2005년 독일 총선에서 총리가 된 후 2017년 4선에 성공하였다.
소박한 시골교회에서 자란 소녀가 통일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과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이끈 것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2010년을 제외하고, 포브스는 메르켈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하였으며, 2015년 <타임>은 ‘자유세계의 총리(Chancellor of the Free World)’라는 이름으로 ‘올해의 인물’에 선정하였다.

세계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退任
메르켈은 2021년 9월 독일 총리 재선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넘기고 당의 지도부를 떠나는 메르켈 총리에게 독일 국민이 보낸 따뜻한 박수와 존경의 마음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가 총리로 있던 지난 16년 동안 부정과 불의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쇼맨십도 없었고, 말에 실수도 적었다. 보여주기식의 사진을 찍기 위해 베를린 뒷골목이나 시장터에 깜짝 출연한 적도 없다.

그녀는 재임 기간에 부동산, 자동차, 요트, 개인 비행기를 사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단벌옷만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가 그녀의 집에 청소부나 음식 도우미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 일은 집에서 남편과 제가 직접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다른 기자가 물었다. “그러면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그리고 이 일은 대부분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우리 아파트와 이웃 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어, 이렇게 함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이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의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하여 주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이다.
4선연임 총리를 끝으로 메르켈은 떠난다고 결정했고, 그녀는 독일의 지도부를 위임한 후 자리를 떠났다. 독일은 6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진정어린 작별 인사를 한 것이다.

16년 전,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 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녀가 그들 나라에서 16년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하지 않았고 자신의 앞선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국가와 8천만 독일 국민을 섬기며 살았다는 게 국민의 평가이다.
독일 국민은 패션으로 화려함을 뽐낸 적도 없고, 금전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청빈했던 화학 물리학자인, 이 독일 지도자에게 단순하지만 국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작별을 고하였다.
도시 전체 주민들이 집 발코니로 나갔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을 외치지도 않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박수만을 보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 같은 것도 없었다. ​

그녀는 떠났고, 그녀의 친척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선출된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우리에게는 참 부러운 이 여인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4선 연임 총리 메르켈이다.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여성이 앙겔라 메르켈이며, 이 여인은 600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도 묘사된다.


저작권자 시사전북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