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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시사전북 2019.8월(통권 196호)

부채는 나의 뼈요, 살이죠!

시사전북닷컴 기자 입력 2019.08.22 10:04 수정 2019.08.22 10:04

방화선 선자장/ 전북무형문화재

“시간이 아깝죠. 부채 만드는 일만 하고 싶어요.”
ⓒ (주)전북언론문화원

전라북도무형문화재 10호(2010.3.12.) 방화선(64) 선자장(단선)은 하루하루 부채 만드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한켠에 가보면 방 선자장의 부채들로 꾸려진 예쁜 공간이 등장한다.
↑↑ 아버지 유품 공구들
ⓒ (주)전북언론문화원

한손 움켜쥐면 가볍기만 한 부채지만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정성스럽게 만들어내는 그녀의 부채에서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묻어난다. 부친의 뜻을 이어 무형문화재의 소중한 역사를 이어가는 그녀를 찾아가 무형문화재로 사는 일, 작업의 즐거움을 들여다보았다.

부채는 손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다. ‘부치는 채’를 줄여서 부채라 한다. 부채를 만드는 사람을 선자(扇子)라 하며, 부채를 만드는 장인을 선자장이라 한다.

우리나라 부채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다. 얇게 켠 대나무 앞뒤로 종이를 붙인 다음 방사형으로 퍼지는 부챗살을 접었다 폈다하는 합죽선. 또 하나는 자루가 달린 둥근 부채인 단선. 방 선자장은 단선만 만든다.
↑↑ 아버지 사진 앞
ⓒ (주)전북언론문화원

합죽선은 대체로 남자들이, 단선은 여자들이 사용했다고 전한다. 합죽선이 넓은 가슴으로 원대한 꿈을 품을 때, 단선은 각양각색의 바람을 다스리며 거침없이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다.
↑↑ 새우선
ⓒ (주)전북언론문화원

방 선자장은 오랫동안 부채의 원료가 되는 대나무의 고장을 다니며 형태를 실험하고 특유의 섬세함으로 전통 문양을 그려 고색창연한 단선의 세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 곡두선
ⓒ (주)전북언론문화원

그녀의 부르튼 손, 베인 입술, 까진 무릎이 산증인 역할을 하듯 하나하나 작품인 단선의 모습에서 그녀의 무수한 세월이 보인다. “손가락, 손톱 성한 데가 없죠. 가시에 찔려 아프기도 하고, 부채는 나의 뼈와 살이라고 해두죠.”
↑↑ 세미선
ⓒ (주)전북언론문화원

그녀가 생각하는 부채의 의미는 무엇일까? 부채는 일상이고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는 그녀는 도련(가위질)을 하며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지만 이제는 그 아픔이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그녀의 아버지 작고한 방춘근 선생은 대한민국 명장 제72-7호(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10호)선자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딸이 이수자로서 3대째 어머니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
↑↑ 약선
ⓒ (주)전북언론문화원

방 선자장의 고향은 전주시 인후동.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부채를 만들었다. 선풍기, 에어컨이 흔하지 않은 시절 부채의 인기가 좋았다. 마을 사람들이 한 번 모이면 160명 정도가 모여 대규모 기업 형태의 가내수공업을 했던 때였다.
부모님들이 부채를 만들다보니 유년시절부터 왠지 부채가 좋았다고 한다. 그녀는 23살 때부터 창작 부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부채 만드는 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딸이 부채 만드는 일을 이어가길 원하지 않았어요. 부채 하나를 들어보면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방 선자장은 부채 만드는 일이 좋았고 아버지의 눈을 피해 부채를 만들어 보곤 했다. 꼼꼼 하게 곧 잘 부채를 만들며 즐거워하자 결국 부채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
↑↑ 온선1
ⓒ (주)전북언론문화원

단선을 만드는 과정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눅진해진다. 우선 대나무를 균일한 굵기로 쪼개고 납작하게 가공한 뒤 종이에 풀을 칠하고 만들고자하는 형태대로 대나무 살을 배열한다. 부채살은 담양에서 대나무를 가져다 만든다.
가늘게 쪼개는 것을 ‘이룬다’고 표현한다. 적당한 힘으로 살살 비비면 티끌이 떨어져 풀칠 선면을 고르게 한다. 뒤에도 종이에 꼭 붙인 다음 부채 형태로 오리고 마무리하는 숱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 하늬선
ⓒ (주)전북언론문화원

그녀의 공방에는 지금도 부친이 쓰던 공구가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장인의 혼이 서려 있는 공구 하나하나를 그녀는 애지중지 다루고 있다.
해외에서 초대를 받아 전시회도 참여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작품은 호평을 받았다. 지난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주관으로 한국공예 디자인 최고봉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녀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전시회에서 방 선자장은 연꽃이 이파리를 형상화한 8가지 단선을 선보였다. 단선이 대나무 삶은 자루로 모아지니 공기 저항을 이겨내 바람을 일으키지만 자루는 당연히 강인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연 줄기 모양 손잡이에도 까맣게 옻칠을 해 바람에도 성격을 부여했다. 단선은 그렇게 검은 빛을 뿜어내며 하얀 바람을 가르는 것이다.
전통의 가치는 정성과 힘든 수작업에서 반복된다. 중국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제품들과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작품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때그때 영감이 떠오르면 만들기 때문에 부채의 종류는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둥근 보름달을 떠올리며 풍년을 기원하는 ‘온선’은 둥근 온선에 꿈과 희망을 담았다. 하늬바람이 너무 예뻐 바람에 휘날리는 듯한 모양으로‘하늬선’을 만들었다. 모시옻칠 ‘세미선’은 댓살을 가늘게 해서 한산모시를 입혀 만든다. ‘약선’은 궁중에서 임금님 약을 다릴 때 쓰였던 부채라고 한다. ‘곡두선’은 댓살을 휘어서 만든 부채라 지어진 이름이듯,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지어주듯 하나하나 부채에도 의미를 담아 상징성 있는 이름을 부여해준다.
밀라노에서 인기를 끌었던 독특한‘흑두루미 곡두선’과 ‘흑두루미 꽃선’은 검은색으로 미를 창조하는 부채의 경지를 보여준다.
연꽃 하나로도 연잎선 연화선 연자선(연밥)등 다양하게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태극선도 목단그림으로 부를 상징하는 단선이 있는가 하면 까치태극선, 무극태극선 등 그 종류가 다양하기 그지없다. 경남 통영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방 선자장은 통영에서 유명한 특산품을 생각한 끝에 ‘새우선’과 ‘멸치선’까지 만들어냈다.
그녀는 수시로 제자들을 키우기 위해 교육하고 함께 자리한다. 한옥마을 체험교실도 매주 토요일 열어 체험학습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무형이라는 기능을 앞으로 더 살려 사명감을 가지고 오랫동안 기능을 닦아온 제자들과 부채 만드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 부을 생각이에요.”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전수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 그녀는 전통 단선부채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오늘도 선 하나하나에 가득 애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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