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正義, Justice)말의 사전적 의미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다.
정의란 말의 라틴어 유스티티아(Justitia)는 정의의 여신이 한손에 저울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형상의 뜻으로서 공평으로서 불의를 물리치는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의사회 구현을 소망하고 있다.
정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람의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숲속의 동물들이나 바다 속의 생물들에게 보다는 더불어 사는 인간 사회와 공동체에 모순됨이 없이 평화로운 안녕과 아름다운 질서를 유지함으로서 사람들의 사회가 온전하고 선하며, 명랑하고 활기찬 신뢰가 조성되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데 있다. 정의는 좋은 사회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준과 규범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정의를 향하는 감정을 가진 존재로서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하며 정의를 갈망한다. 정의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 초석이 된다.
또한 정의는 인간 상호간의 삶속에서 차등 없이 평등한 삶을 추구하며 불공평하기보다 공평한 적용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기를 희구한다. 그것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혹은 문화적이든 지간에 평등과 공평을 지키면서 탁월한 정의로서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정의를 분배의 균등이라고 했고, 플라톤(Platon)은 사람이 각 부분의 책무를 다하고 상호 조화를 이루는 것을 정의라고 했으며, 칸트(I.Kant)는 사람의 의지가 자유의 보편적 법칙에 합하여 다른 사람의 의지와 결합하여 좋은 관계를 맺어 공정함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정의라고 했다.
라인홀드 니버(R. Niebuhr)는 “인간사회에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정의가 필요하며 사랑 없는 정의도, 정의 없는 사랑도 있을 수 없으며 정의와 사랑은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다”라고 했다. 에밀 브루너(E.Bruner)는 “인간대 인간은 항상 인격대 인격으로서 존중하며 사랑 안에서 동등하게 공유해야 한다”라고 했으며, 폴 틸리히((P. Tillich)는 대인관계 속에서 분리된 것을 하나로 결합하여 용서와 사랑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칼빈(Calvin)은 사람이 서로 화해함으로서 정죄와 비방을 하지 않고 폭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마이클 샌델(M.J.Sandel) 교수는 관대한 사랑의 마음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부르짖으며 정의사회 구현을 희망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관대한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의라는 가치가 소중함을 알면서도 의로운 것이 실종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을 상실하여 우리의 현재적 존재감을 박탈하게 하는 비극적인 부정의가 특권 세력에 의해 거대한 성채처럼 버티고 있는 무서운 단면을 표현한 것이 영화 ‘도가니’이며 ‘부러진 화살’이었던 것이다.
정의가 실종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민심이 도처에서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던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정의이지만 연약한 형제와 가난한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유는 정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극히 사사로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유를 정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정의는 사랑이라는 것과 관대한 긍휼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 뿐만 아니라, 비양심적 비도덕적인 것이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략을 부려도 불의는 정의를 이길 수 없고, 정의는 그 어떠한 불의와 사악한 계략에도 이겨내는 힘이 있으며, 한 사람의 정의로 무장하면 불의한 군대보다도 더 강한 것이다.
정의가 무너지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며, 사랑이 무너지면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며, 자유가 왜곡되면 사람 사는 공동체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이 지배하는 곳엔 금력이 필요없고, 신뢰가 지배하는 곳엔 경쟁이 필요없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엔 무기가 필요없는 것이다.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이 존엄성을 가지고 상대를 존중하며 인권을 가지고 사랑하며 함께 공생(共生)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공존, 정의로운 협력, 평화로운 참여, 공평한 분배, 책임적인 자세, 사랑의 우애로 살아가는 좋은 사회가 된다.
정의는 사람과 사람 속에 숨 쉬어야 한다. 정의가 사람을 위해 존재하고 사람은 정의를 소중히 여기며 정의가 살아있게 해야 한다. 정의와 사람은 분리할 수 없고 분리되어 생각해서도 안된다.
정의와 사람은 아프리카 코사어(Xhosa) 우분투(Ubuntu)와 같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했다. 과일이 가득 들어 있는 바구니를 앞에 놓아두고, 누구든지 제일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사람에게 과일 바구니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려 다 같이 바구니에 둘러앉아 함께 과일을 나누어 먹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1등한 아이에게 “몽땅 주려고 했는데 왜 손을 잡고 함께 뛰었느냐?”라고 물어보자 아이들의 입에서 ‘우분투(Ubuntu)’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다는 이야기다. 우분투는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정의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람들 속에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의사회가 구현되는 것이다.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친절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고, 사랑은 사람을 감동하게 하고, 정의는 사람을 존중케 한다. 정의가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너진다.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분배의 원칙 하에서 구성원들에게 행복을 주고 자유를 보장하며 관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좋은 덕으로 인격을 존중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했고 예레미야는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들고, 정직한 사람이 정직한 세상을, 겸손한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깨끗한 사람이 깨끗한 세상을, 사랑의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정의로운 사람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정의로워야 한다. 그래야 정의사회가 구현되는 것이다. 정의가 샘솟는 사회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