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올해의 신지식인’ 선정, 시인(저서: 삼일만 눈뜰 수 있다면), 시의원, 2008년 사막 레이스(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 그랜드슬램 달성 등 일반인들도 하기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시각장애인이 있다. 전주시의원 송경태가 바로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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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립장애인도서관에서 |
| ⓒ (주)전북언론문화원/시사전북/행복나눔 |
좌절과 절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
송의원은 군에서 수류탄 폭발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 수류탄 파편이 온몸을 뒤덮었고 6개월 동안 3번의 대수술을 받았지만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그에게는 좌절과 절망, 칠흑보다 어두움만이 남았다.
2남 3녀의 장남이자 건실한 공학도이었던 그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가족의 멍에라는 단어뿐이었다. 어머니가 몰래 숨죽여 우는 것을 고스란히 들어야만했고, 단란했던 가족의 침묵은 두 눈을 잃은 만큼이나 가슴을 후벼 파고들었다.
죽기로 마음먹고 6번이나 자살시도를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자살'에서'살자'로 마음을 바꾸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일한 친구는 라디오뿐이었다. 어느 날 KBS라디오 프로그램 ‘내일은 푸른 하늘’에서 시각장애인이 대학교를 다닌다는 사연이 나왔다.
거짓인줄 알았다. 눈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교실의 칠판을 볼 수 있으며, 등하교 할 수 있나, 기본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송국으로 전화해서 주인공에 대한 연락처를 받아 연락했다.
연락을 받고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다니는 주인공이 흰 지팡이와 점자책을 가지고 찾아왔다. 점자와 흰 지팡이 보행법을 그에게 배웠다. 그가 “공부를 해라! 특수교사 자격증이 나오면 맹인학교 교편생활을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후 다시 꿈을 꿀수 있다는게 가장 기뻤다.
그 뒤 송의원의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쉴 새 없이 달려온 길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간 송의원은 대학 4학년 때 일본에서 한 달간 머물렀다. 한국과 너무 다른 일본의 장애인 복지수준은 송의원 에겐 충격이었다. 그때 장애인도 행복할 수 있는 한국을 만들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졸업과 함께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따고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장애 때문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냐는 편견 때문이었다. 월급을 받지 않기로 하고 한 점자 주간지에 기자로 입사했다.
국회든 법원이든 그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어차피 못 보는 것 아니냐며 보도 자료도 주지 않았다. 그럴 때는 자료를 줄 때까지 꼼짝도 않고 버텼다. 1년 정도 뚝심 있게 기자생활을 했더니 그제야 그를 향해 쓸 만하다 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장애인 복지와 환경개선을 위해 매진하였다. 그리고 2000년 전 재산을 털어 전북지역 최초의 시각장애인 도서관을 전주에 건립하였다. 시각장애인이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겪은 신의원은 같은 처지의 시각장애인에게 자기와 같은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송의원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힘없는 약자들이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애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 라는 테두리 안에서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2006년에 전주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송의원은 ‘여성장애인 출산장려금지원 조례’를 제정한데 이어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 통과까지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송의원은 “계획했던 것을 시도하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는 게 그의 철학이다. 1%만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한다는 송경태의원은 장애인의 대변자로서 장애인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쉼 없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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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에서 송경태의원 |
| ⓒ (주)전북언론문화원/시사전북/행복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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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동력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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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비사막에서 |
| ⓒ (주)전북언론문화원/시사전북/행복나눔 |
송의원이 자신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데는 마라톤이란 원동력이 있다.
송의원은 두 눈을 잃기 전 등산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했다. 하지만 장애를 얻고부터는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었다. 마라톤대회 개최소식을 라디오에서 듣고 뻥 뚫린 길을 신나게 달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안내견을 분양받아 98년도 춘천국제 마라톤대회를 처음시도 했다. 그 뒤로 전군국제마라톤대회, 김제지평선축제, 고창마라톤대회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5km를 달렸다. 그 이후 하프와 풀코스까지 완주했다. 송의원은 마라톤에 대해 “내가 생각한 만큼 뻥뚫린 길을 신나게 갈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갈수 있다는 거에 만족한다” 라고 말한다.
송의원의 마라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4대 극한 마라톤에 도전한 것이다.
4대극한 마라톤 대회란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마라톤이다. 5박6일 동안 주어진 물과 식량만으로 250㎞를 달리는 극한 마라톤은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죽음의 레이스다. 4개 대륙의 혹독한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이 모든 대회를 완주하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사람은 전 세계에 51명뿐이다. 더구나 장애인으로서는 송 의원이 유일하다.
2005년 처음으로 도전한 장소는 박테리아도 살지 않는 열사의 땅 사하라 사막. 그곳에서 5박 6일간 250km를 달려야 했다. 18kg짜리 배낭을 짊어진 채 휘청 이며 모래 바람을 헤치고 나아갔다. 송 의원은 구간마다 꼴찌를 도맡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맨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했다. 107명 중 77등. 나머지 30명은 레이스를 포기했다.
2007년 고비사막, 2008년 아타카마 사막까지 송의원은 끝까지 완주했다.
그리고 작년 말 남극에 도전한다.
송 의원은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와 불리자들(눈 폭풍)과 사투를 벌였다. 금방이라도 날카롭고 뾰족한 빙하조각이 살을 뚫어버릴 태세였고 미끄러운 빙판과 무릎을 꺾이게 하는 눈밭은 몸의 균형과 정신을 잃게 했다. 섭씨 영하 30도 극지, 송의원은 “달리는 내내 죽음이 옆에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한발 한발 좀 더 앞으로 ......
시의원, 극한마라톤대회 그랜드슬램달성, 시인 등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송의원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장애인전용 문화복지관 , 장애인직업 재활공장, 장애인 전용체육관등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리고 북극, 에베레스트, 아마존정글 등 정복해야할 곳도 남아있다.
송의원은 오지와 극지도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단지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를 통해서 노력하면 안되는 게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라며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오늘도 송경태의원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며 거친 세상을 쉼 없이 달리고 있다.